[16]“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세 단어에 담긴 인간 카이사르

Veni,Vidi,Vici

들어가며 — 세 단어가 지워 버린 것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Veni, vidi, vici.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남긴 말 가운데 이보다 유명한 문장이 또 있을까.

짧고 단호하다. 망설임도 없고, 어려움도 없었던 것처럼 들린다. 마치 전쟁터에 도착하여 적을 살펴본 뒤 손쉽게 승리했다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기원전 47년, 소아시아의 젤라에서 벌어진 전투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카이사르의 군대는 예상하지 못한 공격을 받았고, 전열이 흐트러지는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승리는 빨랐지만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던 승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카이사르는 이 복잡했던 전쟁을 단 세 단어로 표현했다.

그는 왜 그토록 간결한 문장을 남겼을까.

그리고 그 세 단어 안에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어떤 인간의 모습이 숨어 있을까.

Veni, vidi, vici.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1. 이집트에서 돌아온 카이사르 — 끝나지 않은 전쟁

기원전 48년, 카이사르는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폼페이우스를 격파했다.

그러나 폼페이우스가 패배했다고 해서 로마의 내전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폼페이우스파의 잔여 세력은 여전히 저항하고 있었고, 로마와 이탈리아에서도 해결해야 할 정치적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를 추격하여 이집트에 들어갔지만, 그곳에서도 왕위 계승을 둘러싼 분쟁에 휘말려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가 이집트 문제를 마무리할 무렵, 소아시아에서는 또 다른 위기가 발생했다.

폰토스의 옛 왕 미트리다테스 6세의 아들 파르나케스 2세가 로마의 내전을 틈타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파르나케스는 로마군 지휘관 도미티우스 칼비누스를 니코폴리스에서 격파했고, 소아시아의 로마 지배 질서를 위협했다.

카이사르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서쪽에서는 내전이 계속되고 있었고, 동쪽에서는 로마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파르나케스를 그대로 두고 로마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로마의 혼란을 틈타 일어난 반란을 방치한다면 다른 속주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군대를 움직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무조건 전투부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알렉산드리아 전쟁기』에 따르면 카이사르는 파르나케스와 협상을 시도했다. 하지만 파르나케스가 답변과 약속을 반복하면서 시간을 끌자, 카이사르는 더 이상 기다리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에게는 해결해야 할 다른 문제가 너무나 많았다.

전쟁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하되, 피할 수 없다면 신속하게 끝내야 했다.

2. 젤라의 언덕 — 승리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원전 47년, 두 군대는 소아시아의 젤라 인근에서 마주했다.

파르나케스는 높은 지형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고, 카이사르는 그 맞은편에 새로운 진영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파르나케스가 먼저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전쟁기』 74~76장에 따르면, 파르나케스의 군대는 골짜기로 내려온 뒤 로마군이 진지를 구축하고 있던 비탈을 향해 돌진했다.

처음에 카이사르는 적군의 움직임을 실제 공격으로 판단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불리한 지형을 넘어 공격하는 것이 군사적으로 무모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르나케스의 군대는 실제로 공격해 왔다.

진영을 구축하던 로마 병사들은 공구를 내려놓고 급히 무기를 들어야 했다. 전열은 즉시 정돈되지 않았고, 낫을 장착한 전차까지 돌진하면서 혼란이 커졌다.

이때 전세를 바꾼 것은 로마군 우익에 배치된 제6군단이었다.

오랜 전투 경험을 가진 제6군단의 병사들이 적을 밀어내기 시작했고, 다른 부대도 뒤따라 반격에 나섰다.

결국 파르나케스의 군대는 무너졌다.

카이사르는 승리했다.

그러나 이 전투를 살펴보면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젤라의 승리는 카이사르가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예측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파르나케스의 무리한 공격이 있었고, 로마군의 초기 혼란이 있었으며, 이를 극복한 병사들의 전투 경험과 조직력이 있었다.

승리의 중심에는 카이사르가 있었지만, 그 승리를 실제로 만들어 낸 사람들은 수많은 병사들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도대체 카이사르는 어떻게 그토록 많은 사람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게 만들었을까.

젤라전투(기원전47년 8월) 지도 이미지
기원전 47년 8월 젤라전투, 카이사르 이동 경로를 상상한 지도(AI 이미지)

3. Veni, vidi, vici — 세 단어에 담긴 자신감

젤라 전투가 끝난 뒤 카이사르는 유명한 세 단어를 남겼다.

Veni, vidi, vici.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플루타르코스는 카이사르가 로마의 친구에게 승리를 알리면서 이 말을 썼다고 전한다.

수에토니우스는 훗날 폰토스 전쟁의 개선식 행렬에서 이 세 단어가 적힌 표지가 등장했다고 기록했다.

아피아노스 역시 카이사르가 로마에 이 말을 보냈다고 전한다.

기록마다 전해지는 상황에는 차이가 있지만, 이 문구가 전쟁의 신속한 종결을 강조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그런데 나는 이 세 단어를 읽을 때마다 카이사르라는 사람의 독특한 성격을 생각하게 된다.

그는 전투의 어려움을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자신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어떤 위험을 극복했는지, 적군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장황하게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그저 왔고, 보았고, 이겼다고 말했다.

이것은 단순한 승전보였을까.

아니면 자신의 능력을 로마인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정치적 표현이었을까.

카이사르는 로마의 정치가였다.

그는 군사적 승리가 정치적 권위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로마에서는 여전히 그의 정적들이 활동하고 있었고, 내전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동방의 위기를 신속하게 해결했다는 소식은 자신의 권위를 강화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될 수 있었다.

긴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세 단어면 충분했다.

어쩌면 카이사르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능력뿐 아니라, 그 승리를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4. 카이사르는 어떻게 사람을 움직였을까

그러나 세 단어에 담긴 자신감은 카이사르 혼자만의 능력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갈리아에서 보낸 오랜 세월을 생각해 보자.

카이사르는 여러 군단을 서로 다른 지역에 배치하고, 부장들에게 상당한 지휘권을 맡겼다.

때로는 한 군단이 적에게 포위되었고, 다른 군단은 먼 지역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기원전 54년, 갈리아 부족들이 퀸투스 키케로가 지휘하던 로마군의 숙영지를 공격했을 때도 그러했다.

카이사르는 소식을 듣고 병력을 모아 신속하게 구원에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지휘관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빠르게 움직이는 능력만이 아니었다.

멀리 떨어진 부장들이 자신의 임무를 이해하고 있어야 했고, 병사들은 지휘관의 명령을 신뢰해야 했다.

그들은 전투가 없을 때에도 진지를 구축하고, 도로와 다리를 만들고, 참호를 파며, 식량을 확보했다.

전쟁이 시작되면 그 모든 경험이 하나의 조직력으로 나타났다.

카이사르는 이러한 경험을 반복하면서 군대를 움직이는 원리를 체득했을 것이다.

여기서 그의 중요한 능력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경험을 자신의 판단 체계로 바꾸는 능력이다.

많은 사람이 전쟁을 경험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 경험을 다음 전쟁의 지혜로 바꾸지는 못한다.

카이사르는 지난 전투의 경험을 다음 전투의 판단에 활용했고, 군대의 운영과 정치적 판단을 서로 연결했다.

병사들에게는 보상과 명예를 주었고, 부장들에게는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부여했다.

그러한 행동에는 부하들을 아끼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자신의 군대를 더욱 강하게 만들려는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카이사르는 명예를 버린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당장의 명예를 나누어 줌으로써 더 큰 명예와 권력을 얻을 줄 알았던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부하가 공을 세우면 그 부하에게 명예가 돌아간다.

그러나 그 명예를 인정하고 보상하는 지휘관에 대한 신뢰도 함께 커진다.

카이사르는 명예를 나누어 줌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권위를 강화한 것은 아닐까.

이것은 단순한 관대함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조직의 원리를 이해한 지휘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5. 속도는 어디에서 나왔는가

카이사르는 빠르게 움직이는 지휘관이었다.

갈리아 전쟁에서 그는 적의 움직임을 선점하거나 위기에 빠진 군단을 구원하기 위해 신속하게 행동했다.

젤라에서도 그는 파르나케스와의 전쟁을 오래 끌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젤라 전투의 직접적인 승리 원인을 속도에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

실제 전투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공격이 있었고, 숙련된 제6군단의 반격과 로마군의 전열 회복이 승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카이사르가 보여 준 속도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그 속도가 단순히 빠른 행군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카이사르의 속도는 그의 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의 머리와 그가 만들어 놓은 조직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그는 혼자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과 함께 움직일 수 있는 군대를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 온 사람이었다.

병사들이 각자의 임무를 알고, 부장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판단하며, 위기 상황에서도 조직이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훈련하고 경험을 축적했다.

그러한 군대가 있었기에 카이사르의 판단은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어쩌면 진정한 지도자의 능력은 남보다 앞서 달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움직일 때 다른 사람들도 함께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데 있는 것은 아닐까.

SPQR, 로마의 영원한 약속
SPQR, 로마의 영원한 약속

6. 세 단어가 보여 주는 인간 카이사르

나는 카이사르의 생애를 살펴보면서 그가 대단히 이성적인 판단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가 감정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에게도 야망이 있었고, 명예욕이 있었으며, 자신의 능력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로마에서 최고의 권위를 확보하려 했지만, 그 권력을 통해 궁극적으로 어떤 정치질서를 만들고자 했는지는 명확하게 알기 어렵다.

다만 그가 눈앞의 작은 이익보다 더 큰 정치적 목표를 추구했다는 점은 그의 여러 행동에서 읽을 수 있다.

그러한 목표를 이루려면 군대가 필요했고, 그 군대를 움직이려면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했다.

때로는 부하에게 영광을 돌리고, 때로는 협상하며, 때로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그의 자기절제다.

자신의 능력을 믿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을 믿으면서도 매 순간 그 우월함을 증명하려 들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당장의 분노나 작은 명예보다 더 큰 목적을 먼저 생각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물론 카이사르가 언제나 그렇게 행동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역시 위험한 판단을 내렸고, 자신의 야망 때문에 공화정의 정치적 갈등을 더욱 깊게 만들기도 했다.

냉정한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며,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해서 언제나 올바른 결과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모순이 카이사르를 더욱 흥미로운 인간으로 만든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믿었고, 로마의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가 자신과 함께한다는 강한 자기 확신을 가졌던 인물로도 전해진다.

그러나 젤라의 승리조차 그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병사들의 경험과 분투, 적의 판단 착오, 전장의 우연이 함께 작용했다.

그 모든 복잡한 과정이 끝난 뒤 카이사르는 세 단어를 남겼다.

*Veni, vidi, vici.*

그 문장에는 자신감이 있었고, 정치적 메시지가 있었으며, 승리한 지휘관의 강렬한 자기표현이 있었다.

그러나 그 문장에 등장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의 노력도 함께 존재했다.

마치며 — 세 단어 뒤에 남겨진 사람들

우리는 누군가의 성공을 바라볼 때 결과부터 기억한다.

그가 얼마나 빨리 성공했는지, 얼마나 큰 업적을 이루었는지,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가졌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성공에 이르기까지 어떤 판단을 내렸고, 얼마나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으며, 어떤 위험을 견뎌야 했는지는 쉽게 잊는다.

카이사르의 세 단어도 그러하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그 말은 승리의 결과를 너무나 선명하게 보여 준다.

그러나 그 안에는 진지를 구축하던 병사들의 노동도, 갑작스러운 공격에 맞선 제6군단의 분투도, 오랜 전쟁에서 축적된 경험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카이사르의 능력이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가 수많은 사람의 능력을 하나의 목표로 결집시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의 지휘 능력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일을 이루었을 때 우리는 자신의 판단과 노력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그 결과를 가능하게 한 다른 사람들의 수고와 신뢰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또한 눈앞의 작은 감정과 다툼에 매달리느라 정작 자신이 이루려던 더 큰 목표를 잊고 있지는 않은가.

카이사르는 자신의 승리를 세 단어로 표현했다.

그러나 과연 그 세 단어 안에는 무엇이 담겨 있었을까.

그리고 언젠가 우리도 자신의 삶을 몇 마디 말로 돌아보게 된다면, 그 말 속에는 자신의 성취만이 아니라 함께 걸어온 사람들의 이름도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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