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카이사르의 관용 Clementia — 적을 용서하기 전에 무엇을 생각했을까

SPQR 로마의 원로원과 시민

들어가며 — 승리한 뒤에 남는 것

기원전 47년, 젤라 전투에서 카이사르는 놀라운 속도로 적을 무너뜨렸습니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i, vidi, vici).”

우리는 앞선 글에서 이 짧은 말에 담긴 카이사르의 결단력과 행동력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과 승리한 뒤 패배한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이번에는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기원전 49년, 로마 내전이 시작되던 무렵으로 돌아가 보려고 합니다.

앞서 「루비콘강을 건넌 카이사르 — 그는 권력으로 무엇을 이루려 했을까」에서 우리는 코르피니움의 항복과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의 석방을 살펴보았습니다.

당시에는 그 사건을 카이사르의 권력 추구와 정치적 계산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장면을 다시 생각하면서 나는 또 다른 질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카이사르는 패배한 적을 마주했을 때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그는 상대방이 처한 상황과 그가 지켜야 할 것들을 헤아렸던 것일까요.

이번에는 사건의 경과보다 그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인간적 판단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기원전 49년 코르피니움에서 카이사르가 항복한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를 석방하는 모습을 재현한 역사 삽화
기원전 49년 코르피니움에서 카이사르가 항복한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를 석방하는 모습 상상화(AI 이미지)

1. 적을 살려 준 승자 — 관용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기원전 49년 코르피니움에서 카이사르는 자신에게 저항했던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를 처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도미티우스를 비롯한 유력 인사들을 석방했고, 보관 중이던 군자금도 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항복한 병사들은 자신의 군대로 편입시켰습니다.

상대방의 생명과 명예를 보전해 주면서도 군사적 기반은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 사건은 카이사르의 관용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단순히 카이사르가 너그러운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가 적을 살려 주기 전에 무엇을 생각했을지가 궁금합니다.

한 부족의 지도자가 전쟁에서 패배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일까요.

자신의 죽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지켜야 할 가족과 부족민들이 있고, 자신을 믿고 따랐던 사람들의 운명이 걸려 있습니다.

그가 끝까지 저항한다면 자신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파멸할 수도 있습니다.

로마의 귀족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가문의 명예와 재산, 정치적 지위와 후손들의 미래가 있었습니다.

카이사르는 상대방이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고, 무엇을 가장 지키고 싶어 하는지를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 빼앗는 대신 보존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던 것은 아닐까요.

상대방이 그 길을 받아들인다면 더 이상 싸울 이유가 줄어들고, 카이사르는 불필요한 전투 없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그의 행동을 바탕으로 한 추론입니다. 카이사르가 실제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의 군사력뿐 아니라 그가 처한 현실까지 판단의 대상으로 삼았을 가능성은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합니다.

2. 술라와 다른 길 — 적을 죽이는 것만으로는 로마를 얻을 수 없다

카이사르가 젊었던 시절, 로마에는 술라라는 강력한 권력자가 있었습니다.

술라는 내전에서 승리한 뒤 정적들을 대규모로 숙청했습니다. 처형과 재산 몰수를 통해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공포로 권력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카이사르 자신도 젊은 시절 술라의 압력을 피해 몸을 숨겼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는 술라의 방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적을 죽인다고 해서 적대감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죽은 사람에게는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으며,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사람을 제거하면 또 다른 적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카이사르는 이러한 정치적 현실을 이해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그는 기원전 49년 측근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술라의 잔혹한 방식을 따르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고, 온건함과 관대함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지속적인 승리를 이루겠다는 생각을 드러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승리한 뒤에도 로마를 다스릴 수 있어야 했습니다.

어쩌면 그는 적을 죽이는 것보다 적이 더 이상 자신과 싸울 이유를 없애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의 관용은 단순한 연민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고자 했던 정치질서를 위한 이성적 판단이었을 것입니다.

3. 조조가 편지를 불태운 이유 — 관용과 정치적 지혜

중국 삼국시대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관도대전에서 원소를 물리친 조조가 원소와 내통했던 자기 진영 사람들의 편지를 발견했다는 일화입니다.

조조는 그 편지를 조사하여 배신자들을 처벌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편지를 불태워 버렸다고 전해집니다.

원소의 세력이 강성했을 때는 자신조차 앞날을 장담하기 어려웠으니 다른 사람들을 탓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고 합니다.

이 일화는 후대에 전해지면서 문학적으로 각색된 부분도 있으므로 역사적 사실과 전승을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던지는 질문은 흥미롭습니다.

조조는 왜 배신자들을 처벌하지 않았을까요.

그가 모든 사람을 너그럽게 용서하는 성품이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아직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완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배신자를 찾아 숙청하는 일이 더 큰 불안과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요.

나는 후자의 이유도 중요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승리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진심으로 자신을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나간 잘못을 모두 들추어 처벌한다면 살아남은 사람들마저 새로운 저항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카이사르 역시 비슷한 문제를 마주했을 것입니다.

그가 필요로 했던 것은 죽은 적의 숫자가 아니라, 더 이상 자신과 싸우지 않을 사람들의 숫자였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정치적 계산이었다고 해서 그 행동의 의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계산의 결과가 더 많은 죽음이 아니라 더 적은 희생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 독재관 술라의 엄격한 모습과 관도대전 이후 조조가 내통 서신을 불태우는 장면을 대비한 역사 삽화
독재관 술라의 엄격한 모습과 조조가 내통 서신을 불태우는 장면 상상화(AI 이미지)

4. 관용에도 한계가 있었다 — 용서받은 적은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카이사르의 관용이 언제나 성공했던 것은 아닙니다.

코르피니움에서 석방된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는 카이사르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시 폼페이우스 진영에 합류했고, 이후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죽었습니다.

용서받은 사람이 다시 적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카이사르는 사람을 잘못 판단했던 것일까요.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관용은 상대방의 충성을 보장하는 계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카이사르는 용서한 사람이 다시 자신에게 대항할 가능성을 알면서도 관용을 선택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지휘관이라도 모든 사람의 마음과 미래의 행동을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의 판단을 믿고 행동했지만, 그 결과까지 지배할 수는 없었습니다.

로마인들이 운명의 여신이라 여겼던 포르투나(Fortuna)도 그의 모든 선택에 언제나 미소를 보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용서받은 사람은 반드시 감사했을까요.

어쩌면 어떤 사람들은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자신의 운명이 다른 사람의 관용에 달려 있다는 굴욕감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관용은 생명을 구할 수 있지만, 동시에 용서하는 사람과 용서받는 사람 사이에 위계를 만들기도 합니다.

기원전 46년 카이사르가 마르켈루스의 귀환을 허락하자 키케로는 원로원에서 그의 관용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한 시민의 귀환 여부가 공동체의 법과 제도가 아니라 승리한 한 사람의 판단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카이사르는 상대방이 무엇을 잃을까 두려워하는지는 잘 알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무엇을 위해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지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탁월한 지휘관이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알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 역시 신이 아닌 인간이었기 때문입니다.

5.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 —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관용

우리는 살아가면서 타인을 이해한다고 쉽게 말합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아는 타인은 그 사람의 인생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겪었던 경험과 기억, 자신이 배운 지식으로 상대방을 판단합니다.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어떤 상황에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충분히 알지 못하면서도 쉽게 비난하고 평가합니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이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사정을 이해해 주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 전체를 알아주기를 기대하기도 합니다.

나 역시 그렇습니다.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글을 여러 번 쓰면서도 현실에서는 그것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말에 마음이 상하면 먼저 화가 나고, 상대방의 사정을 생각하기보다 내 입장부터 앞세우게 됩니다.

그런 나 자신을 돌아보면 인간이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카이사르도 모든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상대방이 처한 현실과 그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자신의 판단 속에 포함시키려 했던 인물로 보입니다.

그것이 그의 정치적 능력이었고, 때로는 관용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났을 것입니다.

물론 카이사르가 언제나 관대했던 것은 아닙니다.

갈리아 전쟁에서 그는 때로 가혹한 처벌을 내렸고, 저항한 공동체를 파괴하거나 주민들을 노예로 팔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관용을 무조건 본받아야 할 도덕적 모범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부분은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는 카이사르처럼 군대를 지휘하거나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의 관용과 우리의 관용은 그 크기와 성격부터 다릅니다.

그렇다고 그의 이야기가 우리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처럼 거대한 관용을 베풀 수는 없어도, 관용에 이르기까지 그가 거쳤을 법한 생각의 과정은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기 전에 그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한 번 더 생각하는 것.

상대방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 헤아려 보는 것.

자신의 판단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상대방을 이해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의 잘못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

어쩌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관용은 그런 작은 노력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맺으며 — 관용의 크기보다 생각의 깊이를 배우다

카이사르는 위대한 지휘관이었지만 완전한 인간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뛰어난 판단력과 결단력이 있었고, 때로는 놀라운 관용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잔혹한 처벌을 내리기도 했으며, 자신이 베푼 관용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두 알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의 삶에서 배울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의 권력이나 승리의 크기를 따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적을 마주했을 때 상대방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고,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며, 당장의 응징보다 그 이후의 결과까지 살펴보려 했던 판단의 과정을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나는 인간이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그 사람 자신에게조차 모두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해하려는 노력마저 포기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오늘은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내일은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화를 참지 못했더라도 다음에는 조금 더 신중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어제보다 조금은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카이사르의 관용이 우리에게 남기는 교훈도 어쩌면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카이사르의 관용이 지닌 크기를 따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관용에 이르기까지의 생각은 배울 수 있습니다.

나는 오늘 누군가를 판단하기 전에, 그 사람이 무엇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행동했는지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을까요?

그리고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타인을 이해하려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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