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달력을 고친 사람, 로마의 시간을 바꾸다

달력비교-로마력과율리우스력

들어가며 — 445일을 견딘 뒤의 새해

기원전 45년 1월 1일, 로마인들은 새로운 한 해를 맞이했다.

그런데 바로 전해인 기원전 46년은 무려 445일이나 되는 기이한 해였다. 오늘날 역사학자들이 흔히 ‘혼란의 해’라고 부르는 시기다.

카이사르가 오랫동안 어긋나 있던 로마의 달력을 바로잡기 위해 한 해의 길이를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달력을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한다. 새해가 오면 달력을 바꾸고, 날짜를 보며 약속을 정하고, 계절에 따라 일상을 계획한다.

그러나 2천 년 전 로마에서 달력을 개혁한다는 것은 단순히 날짜를 다시 계산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시간의 기준을 바꾸는 일이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정적들을 물리친 카이사르는 왜 달력이라는 문제에까지 관심을 가졌을까.

그는 어떻게 그 문제의 중요성을 알았으며, 무엇을 믿고 오래된 제도를 바꾸려 했을까.

이번에는 전쟁터의 장군도, 원로원에서 연설하는 정치가도 아닌, 로마인의 시간을 새롭게 정비한 인간 카이사르를 살펴보려 한다.

달력제작을 전문가들과 함께 검토하는 카이사르 이미지
달력 제작을 전문가들과 함께 검토하는 카이사르 상상화(AI 이미지)

1. 인간은 언제부터 시간을 계산했을까

인간은 오래전부터 달의 차고 기움과 계절의 변화를 관찰하며 시간의 흐름을 헤아렸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달의 주기를 바탕으로 달력을 발전시켰고, 이집트에서는 이미 365일을 한 해로 하는 태양력을 사용했다.

동양에서도 중국을 중심으로 달의 움직임과 태양의 계절 변화를 함께 고려하는 역법이 발전했다. 달력은 단순히 날짜를 세는 도구가 아니라 농사와 제사, 국가의 행정을 움직이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들은 태양과 달의 운동을 수학적으로 연구했다. 특히 기원전 2세기의 히파르코스는 태양년의 길이를 상당히 정밀하게 계산했다.

그러므로 카이사르가 태양력을 처음 발명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앞선 문명들이 축적한 천문학적 지식을 받아들여, 오랫동안 혼란스러웠던 로마의 달력을 새로운 체계로 바꾸었다.

그의 업적은 새로운 천체의 법칙을 발견한 데 있지 않았다.

이미 알려진 지식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것을 수많은 사람이 따르는 국가의 제도로 실현했다는 데 있었다.

2. 계절을 놓친 로마의 달력

카이사르 이전의 로마 달력은 평년 355일을 기본으로 하고, 필요할 때 윤달을 삽입해 계절과 날짜를 맞추는 방식이었다.

윤달의 삽입은 제사장단의 판단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전쟁과 정치적 혼란 속에서 달력의 조정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사장들의 재량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여지도 있었다.

수에토니우스는 당시 달력이 심하게 어그러져 수확제와 포도 수확제가 제철을 벗어났다고 기록했다.

물론 모든 문제를 제사장들의 태만이나 부패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달의 주기와 태양의 계절을 함께 맞추는 일 자체가 어려웠고, 공화정 말기의 정치적 혼란도 정상적인 조정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로마의 달력이 더 이상 안정적인 시간의 기준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농부에게 계절은 파종과 수확의 문제였고, 상인에게 날짜는 거래와 계약의 기준이었다. 국가에는 행정과 종교의례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공통의 시간이 있었다.

사람들은 자연의 변화를 보고 계절을 알 수 있었지만, 국가가 정한 날짜와 실제 계절이 어긋난다면 일상과 행정에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오랫동안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3. 최고제사장 카이사르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기원전 63년, 카이사르는 로마의 최고제사장(Pontifex Maximus)에 선출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약 37세였다.

최고제사장은 단순히 종교의식만 담당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국가의 공적인 달력과 종교적 날짜를 관리하는 제사장단의 최고 책임자이기도 했다.

따라서 카이사르는 달력의 혼란을 접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그가 실제로 달력을 개혁한 것은 그로부터 약 17년이 지난 기원전 46년이었다.

그동안 그는 갈리아에서 오랜 전쟁을 치렀고, 루비콘강을 건넜으며, 폼페이우스와 내전을 벌였다.

정치적 갈등과 전쟁으로 가득했던 세월이었다.

그렇다면 카이사르는 그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달력의 문제를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던 것일까.

언제부터 개혁을 구상했는지, 정치적 여건 때문에 실행을 미루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직접적인 기록은 없다.

그러나 최고제사장으로서 달력의 문제를 알 수 있었던 그가, 훗날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되었을 때 그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더구나 기원전 46년은 로마가 완전히 안정된 시기도 아니었다. 카이사르는 그해에도 아프리카에서 폼페이우스파와 싸웠고, 내전은 이듬해까지 이어졌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달력 개혁을 추진했다.

어쩌면 카이사르는 눈앞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살아가는 로마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오래된 제도의 무엇이 잘못되었으며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까지 생각했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물론 이것은 그의 행적을 통해 우리가 조심스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해석이다.

그러나 적어도 카이사르의 관심이 전쟁과 권력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은 달력 개혁이라는 성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달력 비교 - 카이사르 이전의 로마 달력과 카이사르의 율리우스력
달력 비교

4. 카이사르는 혼자 달력을 만들지 않았다

달력 개혁에는 천문학과 수학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했다.

카이사르가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었다고 하더라도 혼자 모든 천체의 움직임을 계산하고 새로운 달력 체계를 완성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고대 플리니우스는 카이사르가 달력을 개혁하는 과정에서 소시게네스라는 천문학자의 조언을 받았다고 전한다.

플루타르코스 역시 카이사르가 당대의 뛰어난 철학자와 수학자들에게 달력 문제를 검토하도록 했다고 기록했다.

카이사르 자신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천문학 관련 저술에 대한 고대의 언급도 있다. 다만 원본이 남아 있지 않아 그가 어느 정도 직접 연구했는지는 확정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드러난다.

카이사르는 자신이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들였고, 그 지식을 국가의 제도로 실현했다.

전문가가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는 것과 정치가가 그 지식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실제 제도로 만드는 것은 서로 다른 능력이다.

카이사르에게는 그 두 영역을 연결하는 판단력과 실행력이 있었다.

나는 이 점에서 그의 또 다른 영민함을 발견하게 된다.

뛰어난 지도자란 반드시 모든 분야의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

무엇이 중요한 문제인지 알아보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내며, 필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카이사르는 달력 개혁에서 그러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5. 445일의 해, 로마의 시간이 바뀌다

카이사르는 기원전 46년을 통상 445일로 늘려 계절과 날짜의 어긋남을 바로잡았다.

그리고 기원전 45년 1월 1일부터 새로운 달력 체계를 시행했다.

한 해를 365일로 하고, 4년마다 하루를 더하는 방식이었다.

평균 365.25일을 한 해로 계산한 이 달력을 오늘날 **율리우스력(Julian calendar)**이라고 부른다.

그전까지 제사장단의 재량에 따라 조정되던 달력은 이제 일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체계로 바뀌었다.

물론 새로운 달력도 처음부터 완벽하게 시행되지는 않았다.

로마식 날짜 계산의 특성 때문에 초기에는 윤일을 4년마다가 아니라 3년마다 넣는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문제는 훗날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바로잡혔다.

율리우스력 자체에도 작은 오차가 있었다. 평균 365.25일은 실제 태양년보다 약 11분 길었고,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날짜와 계절 사이에 다시 차이가 생겼다.

결국 1582년 그레고리력 개혁을 통해 윤년 규칙이 수정되었다.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달력은 카이사르의 달력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확립한 체계를 중요한 토대로 삼고 있다.

한 번의 개혁이 2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류의 시간 계산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 성과만큼은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로마포룸에서 일상생활을 하는 로마시민 모습 이미지
로마포룸에서 일상생활을 하는 로마시민 모습(AI 이미지)

6. 달력 개혁은 국가의 질서를 바꾸는 일이었다

고대의 통치자들은 국가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도량형을 통일하고 도로를 정비했으며, 시민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시설을 만들었다.

도량형의 통일은 물건의 크기와 무게에 공통된 기준을 부여했고, 도로의 정비는 사람과 물자가 이동하는 공간을 연결했다.

상하수도 시설은 도시의 생활환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물론 이러한 사업에는 백성의 생활을 편리하게 만드는 목적뿐 아니라 세금 징수와 군사 이동, 국가의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시민들의 일상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다.

달력 개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로가 공간을 연결한다면 달력은 시간을 연결한다.

도량형이 물건의 크기와 무게를 통일한다면 달력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시간에 공통된 기준을 마련한다.

카이사르는 바로 그 시간의 기준을 바꾸었다.

달력 개혁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일처럼 극적인 환호를 불러오는 사건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효과는 사람들이 매일 날짜를 확인하고, 계약을 맺고, 농사를 짓고, 국가의 행정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계속 나타날 수 있었다.

카이사르가 남긴 것은 단순한 달력 한 장이 아니었다.

그는 로마인들이 함께 살아갈 시간의 질서를 새롭게 정비했던 것이다.

7. 시간을 바꾼 인간 카이사르

카이사르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알았고, 정치적 갈등 속에서 사람을 설득하고 결집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달력 개혁에서는 또 다른 모습이 보인다.

그는 오래된 제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전문 지식을 활용했고, 정치적 권한을 실제 개혁으로 연결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전쟁과 정치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부채와 토지, 속주 행정과 시민권, 그리고 달력에 이르기까지 그는 로마의 여러 문제에 손을 댔다.

이 모든 개혁이 처음부터 하나의 완성된 계획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양한 문제를 국가 운영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것을 해결하려 했던 능력은 분명 주목할 만하다.

그가 왜 그렇게 했는지는 여전히 어려운 질문이다.

로마를 더 나은 국가로 만들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자신의 능력에 대한 강한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이름과 권위를 역사에 남기려는 야망도 있었을까.

그 모든 것이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동기가 복잡하다고 해서 그가 이루어낸 개혁의 가치까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카이사르가 달력 개혁을 통해 보여준 판단력과 실행력은 그 자체로 인정할 만한 성과다.

다만 그의 능력이 뛰어났다는 사실과 그에게 얼마만큼의 권력을 허용해야 하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이것은 다음 이야기인 종신독재관의 문제에서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8. 오늘 우리에게 남는 질문

우리는 살아가면서 오랫동안 익숙해진 제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남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에서 문제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배우고, 사람을 찾고, 때로는 오랜 관습을 바꾸는 결정을 내린다.

카이사르의 달력 개혁은 우리에게 그러한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그렇다고 누구나 카이사르처럼 거대한 국가의 제도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자신이 맡은 일과 살아가는 환경 속에서 잘못된 기준을 발견하고 바로잡을 기회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알아보는 안목과 실행하려는 의지다.

나는 오래된 관습이라는 이유만으로 불합리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것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은 미루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카이사르가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시간을 계산하는 방법이 아니라,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질서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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