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 죽은 뒤에도 시민들에게 남긴 선물
기원전 44년 3월 15일,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원로원 회의에 참석했다가 암살당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로마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그가 남긴 유언장이었습니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재산 가운데 4분의 3을 옥타비우스에게, 나머지를 두 친족에게 남겼습니다.
그런데 유언장에는 뜻밖의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로마 시민 한 사람에게 300세스테르티우스를 남기고, 티베르강 근처에 소유했던 정원도 시민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도록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300세스테르티우스가 오늘날의 돈으로 얼마인지는 정확하게 환산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에게 지급해야 할 전체 금액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규모였습니다.
정원 역시 단순한 텃밭이 아니라 로마의 유력자가 소유했던 귀중한 부동산이었습니다.
물론 그 정원의 정확한 면적과 재산 가치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카이사르는 어떻게 그토록 많은 재산을 모았으며, 왜 그 재산을 자신의 가족과 후계자에게만 남기지 않았을까요?

1. 수부라의 소년은 로마 시민들을 잊지 않았을까
카이사르는 로마의 명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귀족들의 호화로운 저택에서만 생활했던 것은 아닙니다.
고대 역사가 수에토니우스는 카이사르가 한때 수부라(Subura)의 소박한 집에서 살았으며, 최고신관이 된 뒤에야 성스러운 길에 있는 공식 관저로 옮겼다고 기록했습니다.
수부라는 로마의 번화한 생활공간이었습니다.
상인과 수공업자들이 일했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좁은 거리에서 부대끼며 살아갔습니다. 부유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카이사르가 어린 시절부터 그곳에서 어떤 사람들과 어울렸는지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가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환경에 있었다는 사실은 생각해 볼 만합니다.
훗날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정복하고, 폼페이우스를 물리치고, 로마에서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는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수부라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모습은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졌을까요?
어린 시절에 익힌 감정과 경험은 때로 성인이 된 뒤에도 오랫동안 남아 있습니다.
권력을 얻은 뒤에 만나는 시민들은 정치적 지지자나 통치의 대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가까이에서 보아 온 사람들은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거리에서 물건을 팔던 상인이었을 수도 있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하던 장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카이사르에게 로마 시민들은 단순히 자신의 권력을 지탱하는 숫자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수부라의 생활 경험이 훗날 그의 유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성품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의 성장환경을 돌아보는 일은 의미가 있습니다.
어쩌면 로마의 지배자가 된 카이사르의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수부라에서 살았던 한 소년의 기억이 남아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2. 빚더미에 앉았던 청년은 어떻게 거대한 부자가 되었을까
카이사르는 처음부터 엄청난 재산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정치 활동에 막대한 돈을 사용했습니다.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축제를 열고, 공공사업에도 자신의 재산을 투입했습니다.
플루타르코스는 그가 공직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전부터 1,300탈란트의 빚을 지고 있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는 그가 얼마나 과감하게 돈을 사용했는지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물론 이러한 지출에는 정치적 목적이 있었습니다.
로마에서 시민들의 지지는 선거와 권력 획득에 매우 중요했습니다. 카이사르는 돈을 사용하여 인기를 얻고, 그 인기를 다시 정치적 영향력으로 바꾸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막대한 재산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가장 중요한 원천 가운데 하나는 갈리아 전쟁이었습니다.
카이사르는 갈리아에서 광대한 영토를 정복하면서 엄청난 전리품을 확보했습니다.
그 재산은 군대를 유지하고 정치적 동맹을 확보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잊어서는 안 될 사실이 있습니다.
그 재산은 평화로운 상업 활동만으로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복당한 사람들의 재산과 삶, 전쟁포로들의 희생이 그 부의 형성 과정에 깊이 얽혀 있었습니다.
카이사르의 부를 이야기하면서 이러한 어두운 측면을 외면한다면, 그의 관대함 역시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3. 그가 남긴 재산에는 누구의 희생이 담겨 있었을까
갈리아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은 카이사르였습니다.
그러나 그 승리를 이루어 낸 사람은 카이사르 혼자만이 아니었습니다.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며 전쟁터를 누볐던 군단병들이 있었습니다.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병사들이 있었고, 살아 돌아왔더라도 상처를 안고 평생을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기다리던 가족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카이사르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실제로 그는 병사들에게 상당한 금전적 보상을 지급했고, 퇴역병들에게 토지를 분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병사들의 희생을 외면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그는 자신이 누리는 막대한 부와 권력이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도움 위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어쩌면 카이사르는 자신의 성공을 오직 자신의 능력과 공로로만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자신과 함께 싸운 병사들, 자신을 지지한 시민들, 그리고 자신의 성공에 기여했던 수많은 사람을 떠올렸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물론 군단병들에게 보상한 것과 일반 시민들에게 재산을 남긴 것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두 행동을 함께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된 생각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자신이 얻은 성공에는 다른 사람들의 몫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카이사르에게 그러한 의식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병사들에게 보상하고 시민들에게 재산을 남겼다는 사실은, 그의 부와 권력을 단순한 개인적 소유욕만으로 설명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4. 로마의 부자들은 자신의 재산을 어떻게 사용했을까
고대 로마에는 막대한 부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크라수스는 거대한 재산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키웠고, 폼페이우스는 동방 원정에서 명성과 부를 얻었습니다.
귀족 가문들은 토지와 노예, 전쟁과 속주 지배를 통해 재산을 축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자신의 재산을 가족에게만 남기고 공동체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폼페이우스는 로마에 거대한 극장과 공공시설을 건립했습니다.
로마의 유력자들은 시민들에게 경기와 연회를 제공하고 공공건축물을 세우면서 명성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행동에는 시민들을 위한 혜택과 자신의 정치적 명예를 높이려는 목적이 함께 있었습니다.
카이사르 역시 이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난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생전에 시민들에게 곡물과 금전을 나누어 주었고, 대규모 행사를 개최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유언에는 또 다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죽은 뒤에도 자신의 재산 일부를 시민들에게 남기기로 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현금뿐 아니라 자신이 소유했던 정원까지 시민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도록 했습니다.
그 정원은 더 이상 자신의 사적인 즐거움만을 위한 공간으로 남겨 두지 않겠다는 뜻을 담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유증만으로 카이사르를 특별히 이타적인 인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시민들을 자신의 유산을 받을 사람들로 기억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합니다.

5. 정치적 계산인가, 인간적인 애정인가
그렇다면 카이사르는 왜 이런 유언을 남겼을까요?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정치적 계산입니다.
카이사르는 시민들의 지지가 자신의 권력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반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죽은 뒤에도 시민들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자신의 후계자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갖도록 만들려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명예욕입니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업적과 이름이 역사에 남기를 바랐던 인물이었습니다.
시민들에게 재산을 남기는 일은 죽은 뒤에도 자신의 명성을 이어 가는 방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시민들에 대한 감사와 보답입니다.
카이사르는 평생 시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했고, 그 지지를 바탕으로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자신이 얻은 것을 그들에게 돌려주려는 마음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수부라에서의 생활 경험, 군단병들의 희생, 오랜 정치 생활을 통해 형성되었을지도 모르는 인간적인 책임감입니다.
이 네 가지 이유는 반드시 서로 충돌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하나의 동기만으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면서도 상대방의 기쁨을 바랄 수 있고, 동시에 자신이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랄 수도 있습니다.
정치적 계산이 있었다고 해서 인간적인 애정이 반드시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인간적인 애정이 있었다고 해서 정치적 계산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카이사르 역시 그러한 복잡한 인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권력을 추구했고, 전쟁에서 막대한 부를 얻었으며, 사치와 화려함도 즐겼습니다.
그러면서도 병사들에게 보상하고 시민들에게 재산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를 완전한 선인이나 냉혹한 권력자로 단정하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처럼 거대한 야망을 품었던 사람에게도 다른 사람의 삶을 돌아보는 마음이 있었을 가능성을 함께 살펴보는 일입니다.
맺으며 — 인간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남기는가
카이사르는 평생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군사적 승리와 명예를 얻었고, 막대한 재산과 권력을 얻었습니다.
그가 얻은 것 가운데에는 자신의 능력으로 이룩한 성취도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의 희생을 통해 얻은 것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작성한 유언장에는 후계자와 친족뿐 아니라 로마 시민들의 이름 없는 삶도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정치적 계산이었을 수도 있고, 명예를 남기려는 욕망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에게 받은 것을 돌려주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것 역시 카이사르라는 인간을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일 것입니다.
어쩌면 그가 평생 추구했던 것은 더 많은 것을 얻는 일이었지만, 마지막에 남긴 유언은 자신이 얻은 것을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가에 대한 또 하나의 대답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저마다 무언가를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재산을 모으고, 지위를 얻고, 성공을 꿈꿉니다.
그러나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면 무엇을 얼마나 얻었는가 못지않게, 그것을 누구와 나누었는가도 중요해질 것입니다.
카이사르는 로마의 지배자가 되었지만, 그의 유언에는 시민들과 함께 나누려 했던 재산도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인간의 진정한 성공은 얼마나 많은 것을 얻었는가에 있을까요, 아니면 자신이 얻은 것 가운데 무엇을 다른 사람들에게 남겼는가에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