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 전쟁이 끝난 뒤에도 남는 싸움
“갈리아는 전체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는 승리의 함성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용감하게 싸웠는지를 자랑하지도 않습니다.
첫머리에 등장하는 것은 갈리아의 지리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설명입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카이사르가 자기 이야기를 쓰면서 자신을 ‘나’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나는 판단했다.’
‘나는 군대를 움직였다.’
그렇게 쓰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직접 씁니다.
‘카이사르가 판단했다.’
‘카이사르가 군대를 움직였다.’
전쟁을 일으키고 군단을 지휘한 당사자가 자신의 행동을 기록하면서, 마치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바라보는 것처럼 글을 쓴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갈리아 전쟁을 치르는 동안 카이사르에게 한가한 시간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군단의 이동을 결정해야 했고, 식량과 보급을 챙겨야 했으며, 부족들의 움직임과 반란의 가능성을 살펴야 했습니다. 로마의 정치 상황도 신경 써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왜 자신의 전쟁을 직접 기록했을까요.
그저 후세에 사실을 남기고 싶어서였을까요.
아니면 자신이 왜 싸웠고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를 다른 사람이 설명하기 전에 먼저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어쩌면 갈리아에서 벌어진 전쟁과는 다른 또 하나의 싸움이 로마에서 계속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1. 『갈리아 전기』는 처음부터 거창한 역사책이었을까
오늘날 우리는 이 책을 『갈리아 전기』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라틴어 제목에 들어 있는 ‘commentarii’는 주석, 기록, 비망록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웅장한 역사문학을 내세우기보다, 자신이 겪은 일을 정리해 훗날 활용할 수 있도록 남겨놓은 기록에 가까운 외형을 취한 셈입니다.
그런데 막상 글을 읽어보면 단순한 메모라고 하기에는 매우 정교합니다.
어디에서 어떤 부족이 움직였는지, 군단은 어디에 배치되었는지, 사절은 왜 찾아왔는지, 카이사르는 어떤 정보를 얻었고 그다음 어떤 판단을 했는지가 차례로 이어집니다.
복잡한 전쟁이 그의 문장 안으로 들어오면 이상할 정도로 정돈됩니다.
문장만 따라가다 보면 이런 흐름이 만들어집니다.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카이사르는 정보를 확인했습니다.’
‘위험을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군대를 움직였습니다.’
결과적으로 그의 행동은 개인적인 욕망보다는 상황에 대한 합리적인 대응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헬베티족의 이동을 다룬 첫 권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들의 이동은 로마 속주와 동맹국에 대한 위협으로 제시되고, 카이사르는 요청을 듣고 상황을 확인한 뒤 군대를 움직입니다.
물론 당시 로마가 국경과 동맹 문제를 우려할 현실적인 이유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동시에 갈리아 원정이 카이사르에게 군사적 명성과 충성스러운 군대, 막대한 정치적 자산을 가져다준 것도 사실입니다.
여기서 기록이라는 것의 묘한 성격이 드러납니다.
기록은 반드시 거짓말을 해야만 한쪽에 유리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실을 먼저 놓고, 어떤 사실을 나중에 놓을 것인가.
어떤 원인은 자세히 설명하고, 어떤 결과는 짧게 지나갈 것인가.
그 선택과 배열만으로도 같은 사건에서 비치는 빛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2. 갈리아에는 군단이 필요했지만, 로마에는 설명이 필요했다
갈리아에서 카이사르가 상대해야 했던 것은 눈앞에 보이는 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에는 눈앞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상대가 있었습니다.
정치적 경쟁자들이었습니다.
카이사르는 오랫동안 로마를 떠나 있었습니다. 갈리아에서 승리를 거두더라도 로마에 있는 사람들이 그 전쟁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왜 전쟁을 시작했는가.
정말 로마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었는가.
왜 전쟁이 계속되는가.
그에게 그토록 오랫동안 군대를 맡겨두어도 되는가.
갈리아에서 카이사르가 직접 대답할 수 없는 곳에서도 이런 질문은 생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평범한 세상에서도 비슷한 일을 경험합니다.
회사에서 어떤 일을 책임지고 처리했는데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해 봅시다.
당사자는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시간이 부족했고, 당시에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으며,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은 끝에 그것이 가장 나은 방법이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던 사람이 결과만 보고 말합니다.
“왜 처음부터 그렇게 했습니까?”
그 순간 우리는 설명하고 싶어집니다.
“그때는 이런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반드시 거짓말이나 변명은 아닙니다.
당사자에게는 당사자만 알고 있는 사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설명을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판단을 이해시키는 방향으로 사건을 정리하게 됩니다.
카이사르에게도 비슷한 문제가 훨씬 거대한 규모로 존재했을 것입니다.
그가 침묵한다고 해서 갈리아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빈자리를 다른 사람이 채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쟁을 지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왜 싸웠고, 왜 그런 판단을 했으며, 왜 그것이 필요했다고 생각했는지를 자신의 언어로 설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갈리아에는 군단이 필요했지만, 로마에는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3. 왜 그는 ‘나’라고 쓰지 않았을까
『갈리아 전기』를 읽으며 가장 흥미로운 부분 가운데 하나는 3인칭 서술입니다.
카이사르는 자신을 ‘나’라고 하지 않고 ‘카이사르’라고 부릅니다.
물론 그가 왜 그런 문체를 택했는지를 그의 내면까지 들어가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문장이 독자에게 주는 느낌의 차이는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봅시다.
“나는 상황을 충분히 검토한 뒤 그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아무리 사실이라 해도 우리는 그 사람의 자기 설명을 듣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데 문장을 조금 바꿔봅니다.
“김 과장은 상황을 검토한 뒤 그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갑자기 조금 다른 느낌이 생깁니다.
마치 사건을 옆에서 지켜본 누군가가 객관적으로 정리한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만약 그 문장을 쓴 사람이 김 과장 자신이라면 어떨까요.
문장의 모습은 객관적인 보고처럼 보이지만,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생략할지를 결정한 사람은 여전히 그 자신입니다.
카이사르의 문장도 이 지점에서 흥미로워집니다.
‘카이사르가 판단했다.’
‘카이사르가 알았다.’
문장은 차분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알았다고 쓸 것인지, 무엇을 몰랐다고 할 것인지, 적의 행동을 어떤 이유로 설명할 것인지, 자신의 판단에는 어떤 배경을 붙일 것인지를 정하는 사람 역시 카이사르입니다.
그래서 3인칭이라고 해서 곧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여기에서 더 어려운 질문이 생깁니다.
사람은 자신에게서 한 걸음 떨어져 말하면 정말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자신에게서 한 걸음 떨어져 있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 더 설득력 있는 자기 설명이 시작되는 것일까요.

4. 그렇다고 『갈리아 전기』를 선전문이라고만 부를 수 있을까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카이사르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건을 배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갈리아 전기』 전체를 단순한 선전문으로 치워버리는 것도 또 하나의 편견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기록에는 실제 군사 작전의 구체적인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지형과 이동, 군단의 배치, 부족 간의 관계와 사절의 왕래가 기록되어 있고, 오늘날 갈리아 전쟁을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료이기도 합니다.
고대인들도 카이사르의 글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키케로는 『브루투스』에서 카이사르의 기록을 꾸밈을 벗은 듯 간결하고 바르며 우아하다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문체에 대한 평가이지, 기록된 모든 사건이 정확하다는 보증은 아닙니다.
반대로 수에토니우스는 훗날 아시니우스 폴리오의 비판을 전합니다.
카이사르가 다른 사람의 보고를 성급하게 믿었을 수도 있고, 자신의 행동 역시 의도적으로 또는 기억의 착오 때문에 정확하지 않게 기록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폴리오 자신의 원문은 남아 있지 않고 수에토니우스를 통해 전해지므로 이것 역시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갈리아 전기』를 두고
‘사실인가, 선전인가.’
둘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이런 질문이 더 중요해 보입니다.
어떤 사실이 선택되었는가.
어떤 인과관계가 강조되었는가.
그리고,
누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5. 카이사르가 말할 때, 말하지 못한 사람들
여기서 잠시 카이사르에게서 시선을 돌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갈리아인들은 이 전쟁을 어떻게 기억했을까요.
베르킨게토릭스는 무엇을 두려워했고, 무엇을 지키고 싶었을까요.
카이사르의 책에는 베르킨게토릭스의 말도 등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읽는 그의 목소리 역시 결국 카이사르가 라틴어 문장으로 전해준 것입니다.
정복당한 평범한 사람들이 로마군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자신들의 땅에서 벌어진 전쟁을 무엇이라고 불렀는지,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그 전쟁을 어떻게 기억했는지 우리는 충분히 알 수 없습니다.
이럴 때 역사를 읽는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유혹은 빈 곳을 상상으로 채우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자료가 없는데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우리의 상상이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버립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직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사람과 기록되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습니다.
오래된 가족사진 한 장을 놓고 형제들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같은 날을 전혀 다르게 기억하기도 합니다.
한 사람은 “그날 정말 즐거웠지”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은 잠시 생각하다가 “나는 그날 많이 서운했는데”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사진은 한 장이고 사건도 하나였지만, 그날을 살아낸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한 사람의 이야기만 기록으로 남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사라진다면,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사람들은 남아 있는 이야기를 그날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갈리아 전쟁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일으키고 지휘한 사람의 기록을 아주 자세히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그 전쟁을 반대편에서 살아낸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는 희미합니다.
그래서 『갈리아 전기』는 귀중한 기록인 동시에, 읽는 사람이 끊임없이 묻게 만드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것은 전쟁의 전부인가, 아니면 살아남은 한쪽의 이야기인가.
6. 사건을 지휘한 사람은 그 사건의 의미까지 지휘할 수 있을까
나는 카이사르를 여기에서 단순한 선전가로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는 실제로 전쟁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상황을 판단해야 했고, 위험을 계산해야 했으며, 때로는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의 행동이 로마에서 어떻게 해석될지도 생각해야 했던 정치가였습니다.
전쟁터에서는 군단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어디로 갈지 명령할 수 있고, 어디에 진지를 세울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생각까지 명령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아주 작은 일에서도 경험합니다.
누군가 나를 오해했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처음에는 그냥 두려고 합니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내가 아니까 됐다.’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어느 순간 설명하고 싶어집니다.
“그게 아니라 그때는 이런 일이 있었어.”
왜 그럴까요.
사실이 틀렸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억울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못 알려지는 것이 싫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 이 여러 마음을 칼로 자르듯 정확하게 나누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카이사르의 마음도 마찬가지였을지 모릅니다.
사실을 남기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판단을 설명하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정치적 공격에 대비하려 했을 수도 있고,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의 마음속에 들어가 어느 하나를 정답이라고 고를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의 기록을 읽으며 한 가지 모습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는 전쟁의 당사자였고 동시에 그 전쟁을 설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건을 장악한 뒤, 그 사건의 의미까지 장악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여기에는 재미있는 역설이 있습니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남겼지만 그 이야기의 최종적인 의미까지 결정하지는 못했습니다.
키케로가 읽었습니다.
폴리오가 의심했습니다.
후대의 역사가들이 다시 읽었습니다.
그리고 2천 년이 지난 지금 우리도 다시 읽고 있습니다.
사건은 지휘할 수 있어도, 그 사건이 훗날 어떻게 해석될 것인지는 끝내 한 사람이 지휘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갈리아 전기』
7. 우리는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여기까지 읽고 나면 카이사르의 문제가 꼭 2천 년 전 로마 정치가에게만 해당하는 것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도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며 살아갑니다.
친구와 오래전 일을 이야기하다 보면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네가 먼저 화냈잖아.”
그러면 상대방이 말합니다.
“아니야. 네가 먼저 그런 말을 했으니까 내가 화를 냈던 거야.”
둘 중 한 사람이 반드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각자의 기억 속에서 먼저 남아 있는 장면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에 실패했을 때도 그렇습니다.
그때는 경기가 나빴고, 돈이 부족했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고,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고 설명합니다.
모두 사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이 잘되었던 이야기를 할 때는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때 내가 판단을 잘했지.”
“남들이 말렸지만 내가 밀어붙였어.”
실패를 설명할 때는 상황이 크게 보이고, 성공을 설명할 때는 나의 판단이 조금 더 크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것도 반드시 의도적인 거짓말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기억은 지나간 모든 일을 똑같은 크기와 선명함으로 보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장면은 오래 남습니다.
어떤 장면은 희미해집니다.
어떤 잘못은 오랫동안 마음에 걸리고, 어떤 잘못은 당시의 사정을 설명하다 보니 어느새 작아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남은 기억들을 이어 붙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듭니다.
‘나는 이런 삶을 살아왔다.’
그 이야기가 바로 내가 이해하는 나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보면 기억 역시 기록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기억도 선택하고, 배열하고, 의미를 붙입니다.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쟁에서 일어난 수많은 일 가운데 어떤 사건을 기록하고, 어떤 사건을 자세히 설명하고, 어떤 판단에 이유를 붙였습니다.
우리 역시 살아온 수많은 날 가운데 몇몇 장면을 골라 자신의 삶을 설명합니다.
물론 우리의 삶과 카이사르의 전쟁을 같은 저울에 올려놓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자기 자신을 설명하려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점에서는 아주 오래전 그 사람의 모습이 전혀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갈리아 전기』를 덮으며 나는 카이사르에게 묻던 질문을 결국 나 자신에게 돌려보게 됩니다.
나는 오래전 일을 떠올릴 때 내가 잘했던 일만 조금 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잘못했던 일에는 당시의 사정을 충분히 붙이면서, 다른 사람의 잘못에는 결과만 보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들려주는 내 인생 이야기 속에서 너무 작아져 버린 다른 사람의 목소리는 없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묻게 됩니다.
나는 내 삶을 기억하고 기록하면서 사실을 남기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견딜 수 있는 모습으로 나 자신을 조금씩 다시 쓰고 있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