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 3년 전에는 제네바였다
기원전 58년, 카이사르는 제네바 부근에서 헬베티족의 이동을 막으며 갈리아 전쟁에 발을 들였습니다.
그로부터 3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카이사르가 바라보는 세계는 놀라울 만큼 넓어졌습니다.
기원전 57년에는 북쪽의 벨가이족과 싸웠고, 이듬해에는 대서양 연안의 베네티족을 비롯한 여러 공동체의 저항을 제압했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55년에는 라인강에 다리를 놓아 군대를 이끌고 강 건너 게르만 지역에까지 들어갔다가 돌아왔습니다.
제네바에서 시작된 전쟁은 어느새 라인강과 대서양 연안까지 뻗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여름, 카이사르의 시선은 다시 바다 건너로 향했습니다.
브리타니아였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갈리아가 완전히 평온해진 것도 아닌데 총사령관인 카이사르가 군대를 이끌고 바다 건너 섬으로 떠나도 되었을까요?
카이사르도 그 위험을 모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배후의 모리니족 일부에게 인질을 받아두었습니다. 자신은 두 개 군단을 데리고 브리타니아로 향하면서 나머지 병력은 사비누스와 코타 등 부하 지휘관들에게 맡겨 메나피족과 아직 복종하지 않은 모리니족을 상대하게 했습니다. 출항항에도 수비대를 남겼습니다.
갈리아 전체가 안전해졌기 때문에 떠난 것이 아니라, 남은 위험을 부하들과 병력에게 맡겨둔 채 새로운 위험을 향해 나아간 것에 가까웠습니다.
그렇다면 의문은 오히려 더 커집니다.
카이사르는 왜 그렇게까지 해서 바다를 건너야 했을까요?

1. 가까워 보이지만 알 수 없었던 섬
오늘날 지도를 보면 프랑스 북부와 영국 남동부 사이는 그리 멀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1세기의 로마군에게 그 바다는 단순히 거리가 짧은 물길이 아니었습니다.
바람의 방향과 조수에 따라 배의 움직임이 달라졌고, 수십 척의 목조 수송선에 병사와 말, 무기와 식량을 나누어 싣고 동시에 움직여야 했습니다. 안전하게 배를 댈 수 있는 해안과 항구에 대한 정보도 필요했습니다.
카이사르 자신도 『갈리아 전기』에서 브리타니아에 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적었습니다.
그는 상인들을 불러 섬의 크기와 주민들, 부족들의 세력과 전투 방식, 대형 선박이 들어갈 수 있는 항구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만족할 만한 정보를 얻지 못했습니다.
정찰을 위해 장교를 먼저 보냈지만 그 역시 해안에 내려 직접 살펴보지 못하고 배에서 관찰한 뒤 돌아왔습니다.
그렇다고 브리타니아가 로마인들에게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은 신비의 섬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해협을 사이에 둔 갈리아와 브리타니아 사이에는 이미 교류가 있었고, 카이사르 역시 브리타니아인들이 갈리아의 적들에게 원군을 보냈다고 주장했습니다.
문제는 ‘알고 있다는 것과 군대를 이끌고 들어갈 만큼 알고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브리타니아 역시 하나의 통일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여러 공동체와 지도자들이 각자의 영역과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카이사르에게 이 섬은 가까이 있었지만, 아직 로마군이 전쟁을 수행하기에는 충분히 알지 못하는 땅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건너갔습니다.
2. 첫 번째 장면 — 절벽 위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기원전 55년, 카이사르는 약 80척의 수송선에 두 개 군단을 나누어 싣고 바다를 건넜습니다.
브리타니아 해안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해안의 높은 곳에 무장한 브리타니아 병력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카이사르가 처음 도착한 곳은 바로 상륙하기에 불리했습니다. 높은 지대에서 공격을 받으면 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로마군이 불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카이사르는 곧바로 병사들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배를 이동시켜 보다 평탄하고 열린 해안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문제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병사들은 익숙하지 않은 깊은 물속으로 내려야 했습니다. 무거운 장비를 지닌 채 파도를 헤치며 육지로 나아가야 했고, 브리타니아 전사들은 말과 전차를 이용해 해안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갈리아 전기』에는 유명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제10군단의 독수리 기수가 먼저 바다로 뛰어들며 동료들에게 자신과 군단의 독수리를 적에게 넘기지 말라고 외쳤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말을 현장에서 누군가 그대로 받아 적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갈리아 전기』를 쓴 사람이 바로 이 원정을 지휘한 카이사르였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로마군에게 첫 브리타니아 상륙은 육지에서 벌이던 익숙한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배에서 내려 바다를 통과해야 비로소 전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렵게 해안에 올라섰을 때, 카이사르의 가장 큰 위기는 이미 지나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진짜 위기는 그 뒤에 찾아왔습니다.
3. 두 번째 장면 — 돌아갈 배가 부서진 밤
상륙한 지 며칠 뒤였습니다.
기병을 태운 배들이 갈리아에서 출항했지만 거센 폭풍을 만나 브리타니아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무렵, 보름달과 높은 조수가 겹쳤습니다.
카이사르의 기록에 따르면 로마군은 대서양의 큰 조수 차이를 충분히 알지 못했습니다.
밤사이 바닷물이 높이 들어왔고 폭풍까지 겹쳤습니다.
육지로 끌어올려 놓았던 군선에도 물이 들어왔고, 닻을 내리고 있던 수송선들은 파도에 부딪혔습니다.
아침이 되었을 때 여러 배가 파손되어 있었습니다.
일부는 부서졌고, 다른 배들도 밧줄과 닻을 비롯한 장비를 잃어 당장 항해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습니다.
병사들에게는 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돌아갈 배가 없을 수도 있었습니다.
기병도 오지 않았습니다.
겨울을 브리타니아에서 날 계획이 아니었으므로 충분한 식량을 준비해 둔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다 건너 낯선 땅에서 로마군의 퇴로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브리타니아의 지도자들도 그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카이사르의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로마군에게 기병이 없고, 배가 파손되었으며, 식량도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고 다시 공격할 기회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제 문제는 브리타니아를 정복할 수 있느냐가 아니었습니다.
로마군이 무사히 갈리아로 돌아갈 수 있느냐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나는 이 장면에서 카이사르의 자신감에 생긴 틈을 보게 됩니다.
그는 바다를 건널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다는 군단장의 명령을 듣지 않았습니다.
4. 부서진 배를 다시 묶다
카이사르는 물러앉지 않았습니다.
병사들에게 파손이 심한 배의 목재와 금속을 뜯어 다른 배를 수리하도록 했습니다. 갈리아에도 필요한 선박 장비를 보내도록 지시했습니다.
군량을 모으던 병력이 공격받자 구원 병력을 이끌고 나갔고, 이후 다시 전투를 벌였습니다.
결국 브리타니아 측은 강화를 요청했습니다.
카이사르는 인질을 요구한 뒤 겨울이 오기 전에 갈리아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약속한 인질을 실제로 보낸 공동체는 많지 않았습니다.
영토를 얻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로마군을 주둔시킨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브리타니아 원정을 완전한 승리라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서 보이는 카이사르는 무모한 모험가만도 아니고, 모든 변수를 계산해 놓은 천재도 아닙니다.
정보가 부족한데도 움직였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자연 앞에서 퇴로까지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실패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는 자신이 가진 사람과 물자를 다시 묶어 돌아갈 길을 만들었습니다.
대담함과 과신은 때때로 같은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성공하면 결단으로 불리고 실패하면 무모함으로 불리지만, 선택하는 순간에는 둘을 쉽게 가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이상한 다음 장면이 있습니다.
카이사르는 갈리아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다시 그 바다 앞에 나타났습니다.

5. 세 번째 장면 — 그런데 그는 다시 왔다
한 번 건너가 보니 무엇이 위험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배가 부족했습니다.
기병을 따로 수송하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조수와 폭풍은 예상보다 위험했습니다.
해안에 도착하는 것만으로 원정이 성공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안전한 선택은 분명해 보입니다.
“브리타니아는 아직 때가 아니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기원전 54년, 그는 더 많은 병력과 훨씬 큰 규모의 함대를 준비해 다시 브리타니아로 향했습니다.
두 번째 원정의 카이사르는 첫 번째 원정 때와 같지 않았습니다.
한 번의 실패에 가까운 경험을 통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배운 뒤 다시 건너간 사람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섬의 내부로 더 깊이 들어갔습니다.
브리타니아의 여러 세력은 카시벨라우누스를 중심으로 저항했습니다.
카이사르는 템스강을 건너 그의 세력을 압박했습니다. 그러나 브리타니아 내부 역시 하나로 뭉쳐 있지 않았습니다.
카시벨라우누스와 대립하던 트리노반테스 등 여러 공동체가 카이사르에게 협력하거나 항복했습니다.
카이사르는 이 내부의 균열도 이용했습니다.
결국 카시벨라우누스는 협상에 나섰고 인질과 공물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카이사르는 브리타니아에 로마군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섬 전체를 점령하지도 않았습니다.
다시 바다를 건너 갈리아로 돌아왔습니다.
6. 그렇다면 왜 두 번이나 건넜을까
카이사르는 첫 번째 원정의 이유를 브리타니아인들이 갈리아의 적들에게 원군을 보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갈리아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바다 건너의 지원 관계까지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또 그해에 큰 전쟁을 치를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브리타니아에 들어가 주민과 지형, 항구와 상륙지를 알아두는 것 자체가 이익이라고 판단했다고 적었습니다.
그 말대로라면 첫 원정은 정복전쟁이라기보다 ‘무력을 동반한 정찰’의 성격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될까요.
후대 역사가 카시우스 디오는 카이사르가 브리타니아를 강하게 탐냈다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디오는 사건으로부터 약 250년 뒤의 인물입니다.
카이사르 자신의 설명만으로 그의 행동을 모두 이해할 수도 없지만, 후대 역사가의 평가만으로 그의 마음을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행동입니다.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바다를 건넜습니다.
첫 원정에서 큰 위험을 겪고도 이듬해 더 많은 준비를 해서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 안에는 갈리아에 대한 브리타니아의 지원을 차단하려는 군사적 판단도 있었을 것입니다.
미지에 가까운 지역을 먼저 파악하려는 전략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로마 장군들이 쉽게 하지 못한 일을 했다는 명예와 정치적 효과 역시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그 가운데 어느 하나만이 진짜 이유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7. 정복하지 않았는데도 이름은 남았다
카이사르는 브리타니아를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첫 원정에서 얻은 영토는 없었고, 두 번째 원정에서도 주둔군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브리타니아가 본격적으로 로마의 지배 아래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약 한 세기 뒤인 서기 43년,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카이사르의 두 차례 원정을 오늘날 의미의 ‘영국 정복’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하나 남았습니다.
땅은 얻지 못했지만 이름은 남았습니다.
카이사르는 ‘브리타니아를 정복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바다를 건너 브리타니아에 로마 군단을 이끌고 들어간 장군으로 기억되었습니다.
갈리아에서 그는 로마 속주의 경계를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브리타니아에서는 다시 바다라는 또 하나의 경계를 넘어갔습니다.
어쩌면 인간에게는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쉽게 가지 못한 곳에 먼저 도착하고 싶은 욕망, 자신의 이름을 그곳에 남기고 싶은 욕망도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도자의 큰 꿈은 혼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병사들은 깊은 바다로 뛰어들어야 했고, 폭풍 속에서 부서진 배를 고쳐야 했습니다.
브리타니아의 사람들에게도 그 도전은 어느 로마 장군의 위대한 모험이 아니라 자신의 땅으로 들어온 외부 군대와 맞서야 하는 현실이었습니다.
누군가의 대담한 도전이 역사에 이름을 남길 때,
그 이름 뒤에서 누가 위험과 대가를 감당했는지도 함께 물어야 합니다.
실패했기 때문에 다시 건넜을까
나는 두 번의 브리타니아 원정 가운데 오히려 두 번째 출항이 더 궁금합니다.
첫 번째 원정을 떠날 때 카이사르는 브리타니아의 바다를 충분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에는 달랐습니다.
그 바다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습니다.
배가 부서질 수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상륙 자체가 전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다시 갔습니다.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일까요.
아니면 실패했기 때문에 더욱 돌아가야 했던 사람일까요.
첫 원정의 경험에서 배우고 더 철저히 준비한 현실적인 지휘관의 모습도 보입니다.
동시에 한 번 시작한 일을 미완성으로 남겨두지 않으려는 강한 욕망도 읽을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전략이고 어디서부터가 자존심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카이사르 자신에게도 둘은 완전히 나뉘어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8. 오늘 우리에게 남는 질문
우리도 살면서 때때로 바다 앞에 섭니다.
익숙한 곳에 머무를 것인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건너갈 것인지 선택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건너가는 것은 용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믿는 과신일 수도 있습니다.
더 어려운 것은 한 번 건넜다가 실패한 뒤입니다.
그때 돌아서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다시 준비해서 건너는 것이 용기인지 우리는 쉽게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카이사르의 두 번째 브리타니아 원정을 바라보며 나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나는 실패한 곳에서 물러날 줄 아는 사람인가. 아니면 다시 건너가야 할 이유를 찾는 사람인가.”
그리고 다시 건너가려 한다면,
“그것은 첫 실패에서 무엇인가를 배웠기 때문인가.”
“아니면 실패한 채로 끝내는 것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