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루비콘 강 앞에서, 그는 무엇을 지키려 했을까

고민하는 카이사르

들어가며 — 한 인간의 삶이 멈추어 선 곳

기원전 49년 1월,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강 루비콘.

로마의 장군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그 강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는 갈리아에서 수많은 전쟁을 치른 사람이었다. 거대한 부족들의 저항을 꺾었고, 로마의 영토를 넓혔으며, 자신의 이름을 로마 역사에 깊이 새겨 놓았다.

그런데 이제 그의 앞에는 수많은 적군도, 난공불락의 성벽도 없었다.

작은 강 하나가 있었을 뿐이다.

그 강을 건너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군대를 이끌고 그 강을 건너는 순간,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물론 로마의 미래까지 달라질 수 있었다.

수에토니우스와 플루타르코스는 카이사르가 강 앞에서 잠시 멈추어 생각했다고 전한다.

그런데 나는 그가 정말 그곳에서 처음으로 결심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카이사르는 이미 라벤나에서 병력을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를 만큼 경솔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가 강 앞에서 마주한 것은 단순히 건널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 하는 선택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평생 자신이 쌓아 온 모든 것을 돌아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명문가의 후손이라는 자부심, 젊은 시절 얻은 명예, 정치적 성공, 갈리아에서 거둔 승리, 그리고 자신을 믿고 따르는 병사들.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었다.

나는 카이사르의 삶에서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얼마나 많은 전쟁에서 승리했는가보다, 그토록 많은 것을 이룩한 사람이 무엇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운명을 걸었는지가 더 궁금하기 때문이다.

1. 태어날 때부터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카이사르는 로마의 오래된 파트리키 귀족 가문인 율리우스 가문에서 태어났다.

율리우스 가문은 자신들의 조상이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이아스의 아들 율루스이며, 그 혈통이 여신 베누스에게까지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 신화적인 이야기지만, 로마 사회에서 이러한 혈통은 정치적 권위와 명예의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었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가문에 대한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수에토니우스의 『카이사르전』 제6장에 따르면, 그는 고모 율리아의 장례식에서 가문의 혈통을 설명하며 외가 쪽은 로마의 왕 안쿠스 마르키우스와 연결되고, 친가 쪽은 불멸의 신들과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이 장면이 나에게는 무척 흥미롭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가문이 특별하다는 사실을 단순히 마음속으로만 생각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을 공개적으로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명문가 출신이라는 것이 곧 당대 최고의 권력을 가진다는 뜻은 아니었다.

율리우스 가문은 오래된 혈통을 자랑했지만, 카이사르가 태어날 무렵 로마의 정치적 권력을 독점하고 있던 가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혈통에 걸맞은 명예를 스스로 얻어야 하는 처지였다고 볼 수도 있다.

나는 여기에서 그의 야망이 자라날 수 있는 하나의 토양을 발견한다.

자신은 특별한 가문의 후손이라는 믿음.

그러나 그 특별함을 현실에서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

그 두 마음이 젊은 카이사르 안에서 함께 자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시민관수여와 율리우스가문
시민관을 받는 카이사르와 율리우스 가문을 상징하는 여신의 모습을 그린 상상화(AI 이미지)

2. 젊은 카이사르가 얻은 시민관 — 물려받은 명예와 스스로 얻은 명예

카이사르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은 것은 갈리아 전쟁보다 훨씬 이전이었다.

기원전 80년 무렵, 그는 아시아 속주에서 마르쿠스 미누키우스 테르무스의 휘하에 복무했다.

수에토니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카이사르는 레스보스섬의 미틸레네를 공격하는 전투에서 공을 세워 시민관(Corona Civica)을 받았다.

시민관은 참나무 잎으로 만든 관으로, 전투에서 동료 로마 시민의 생명을 구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명예로운 군사훈장이었다.

로마의 군사훈장 가운데서도 극히 드물게 수여되는 풀잎관 다음으로 높은 영예를 지닌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 훈장은 젊은 카이사르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가 자신의 가문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면, 시민관은 그 자부심을 자신의 능력으로 뒷받침하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명문가의 혈통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시민관은 전쟁터에서 자신의 행동으로 얻은 명예였다.

나는 이 차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카이사르는 이제 단순히 유명한 조상을 둔 젊은 귀족이 아니었다.

로마가 그의 군사적 공적을 인정한 사람이 된 것이다.

물론 그가 시민관을 받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그 훈장을 평생 어떻게 기억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스스로 얻은 명예가 한 인간의 자기 인식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는 훗날 갈리아에서 자신의 군사적 재능을 거듭 증명했다.

그렇다면 그 성공의 뿌리에는 젊은 시절부터 쌓여 온 자신감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3. 자신이 남다른 사람이라는 믿음은 어떻게 자라났을까

카이사르의 젊은 시절은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마리우스와 킨나의 정치적 인맥에 연결되어 있었고, 술라가 권력을 장악한 뒤에는 정치적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술라의 요구에도 아내 코르넬리아와 이혼하지 않았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젊은 카이사르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의지를 지키려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이후 그는 정치적 활동을 이어 갔다.

변론 능력을 키웠고, 대중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렸으며, 재무관과 법무관을 거쳐 집정관에 이르는 길을 걸었다.

기원전 63년에는 명망 높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최고제사장인 폰티펙스 막시무스에 선출되었다.

정치적 경쟁이 치열했던 로마에서 이러한 성공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자신을 후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많은 빚을 감수하면서 정치적 기반을 넓혀 가는 대담함도 있었다.

사람을 설득하고 관계를 맺는 능력 역시 뛰어났다.

그는 정치적 경쟁자들과 협력할 때를 알았고, 필요하다면 적대적인 세력과도 협상했다.

하지만 이러한 능력이 그를 언제나 절제되고 합법적인 행동만 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정치적 관행을 무리하게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았고, 권력을 얻기 위해 위험한 선택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는 수많은 경쟁 속에서 거듭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왔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카이사르의 내면에 어떤 믿음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한다.

자신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

다른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도 자신은 해낼 수 있다는 확신.

로마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자신이 특별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

물론 이것을 그의 실제 속마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젊은 시절부터 이어진 그의 행동을 살펴보면, 자신의 능력에 대한 강한 신뢰가 있었으리라는 해석은 무리하지 않아 보인다.

4. 알렉산드로스 앞에서 느낀 초조함

수에토니우스는 카이사르가 히스파니아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조각상을 보고 탄식했다는 일화를 전한다.

알렉산드로스는 젊은 나이에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는데, 자신은 아직 그에 견줄 만한 일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이 일화가 실제로 있었던 그대로 전해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후대 사람들이 카이사르의 야망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임은 분명하다.

나는 이 일화에서 조금 다른 감정을 느낀다.

자신이 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정작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바라보며 초조해할 수 있다.

카이사르도 그랬을까.

그는 자신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오히려 아직 위대해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견디기 어려워했을지도 모른다.

높은 자부심은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러나 그 자부심이 커질수록 실패를 받아들이는 일은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다.

나는 이 점을 훗날 루비콘 강 앞에 선 카이사르와 연결해 보고 싶다.

그는 단순히 권력을 잃을 위기에 처한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특별한 능력과 운명이 있다고 믿어 왔다면, 그 믿음 자체가 무너질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인 사람이었을 수 있다.

카이사르의 갈리아정복 지도 이미지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 여정을 역사적 기반으로 상상하여 만든 지도(AI 이미지)

5. 갈리아에서 그는 무엇을 얻었을까

기원전 58년부터 카이사르는 갈리아에서 오랜 전쟁을 치렀다.

그는 헬베티족의 이동을 저지했고, 게르만 세력과 싸웠으며, 브리타니아로 원정했다.

마침내 베르킨게토릭스가 이끄는 갈리아의 대규모 저항도 진압했다.

로마의 입장에서 카이사르는 엄청난 군사적 성공을 거둔 장군이었다.

그러나 그 전쟁이 정복당한 사람들에게 남긴 고통 역시 잊어서는 안 된다.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노예가 되었고, 갈리아의 공동체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그의 승리를 이야기하면서 그 희생을 지워 버릴 수는 없다.

그럼에도 카이사르 개인에게 갈리아 전쟁은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그는 막대한 부와 명성을 얻었다.

무엇보다 오랜 전쟁을 함께 치른 군대를 가지게 되었다.

병사들은 그의 지휘 아래 승리했고, 그는 병사들의 능력과 성향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내리는 명령이 실제 전쟁터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도 수없이 경험했다.

이쯤 되면 자신의 군사적 능력에 대한 확신이 대단히 강해졌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단순히 명문가 출신의 정치인이 아니라, 로마에서 가장 뛰어난 군사적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성공이 그를 위험에 빠뜨렸다.

로마의 공화정은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큰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경계했다.

특히 개인에게 충성하는 군대를 거느린 장군은 다른 정치인들에게 두려운 존재였다.

카이사르가 갈리아에서 승리할수록 그의 명성은 커졌지만, 로마에서 그를 경계하는 사람들의 불안도 커졌다.

성공이 그를 강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그 성공이 정치적 위기의 원인이 된 것이다.

6. 폼페이우스 — 동맹이었던 사람은 왜 적이 되었을까

한때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는 정치적 동맹이었다.

기원전 60년 무렵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는 서로의 이해관계를 위해 협력했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딸 율리아를 폼페이우스와 결혼시켰다.

그들은 단순히 정치적으로 협력하는 관계를 넘어 가족으로 연결되었다.

그러나 기원전 54년 율리아가 사망하고, 이듬해 크라수스가 파르티아 원정에서 목숨을 잃으면서 세 사람을 이어 주던 중요한 연결고리가 사라졌다.

이후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를 견제하는 원로원 세력과 가까워졌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관계가 하루아침에 단순한 적대관계로 바뀐 것은 아니었다.

로마의 정치적 상황과 각자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하지만 카이사르에게 폼페이우스의 변화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한때 자신의 정치적 동반자였고, 가족이었던 사람이 이제 자신의 군사적 지휘권을 내려놓으라고 요구하는 세력과 함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이사르는 『내전기』에서 폼페이우스가 자신을 시기하는 정적들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물론 이것은 카이사르 자신의 설명이다.

폼페이우스에게도 자신의 권위와 정치적 입장을 지켜야 할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카이사르가 이 갈등을 단순한 정치적 경쟁으로만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가능성을 생각한다.

그에게는 자신의 능력과 공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할 사람이 오히려 자신을 위협하고 있다는 감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배신감이었는지, 분노였는지, 실망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오랫동안 함께했던 사람과의 대립이 정치적 위기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으리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7. 군대를 내려놓으라는 요구는 무엇을 의미했을까

갈리아 총독으로서 카이사르는 군대를 지휘할 권한, 곧 임페리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권한은 영원하지 않았다.

그가 지휘권을 내려놓고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오면 정적들의 공격과 재판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었다.

카이사르는 로마에 직접 들어가지 않고도 다음 집정관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특례를 유지하려 했다.

반면 원로원 강경파는 그가 군대를 해산하고 지휘권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카이사르는 자신과 폼페이우스가 함께 군사력을 내려놓는 방안도 제시했다.

그러나 양측의 불신은 이미 깊어져 있었다.

그가 군대를 해산했다고 반드시 처벌받았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반대로 아무런 불이익 없이 정치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으리라고 장담할 수도 없었다.

카이사르가 마주한 것은 바로 그 불확실성이었다.

여기에서 나는 그가 느꼈을 두려움을 생각한다.

그는 이미 수많은 전쟁터에서 생명의 위험을 겪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정적들의 판단에 맡기는 일은 전쟁터의 위험과는 또 다른 문제였을 것이다.

전쟁터에서는 자신이 명령을 내리고 상황을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지휘권을 내려놓고 로마로 돌아가면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크게 줄어들 수 있었다.

어쩌면 그에게는 이것이 더욱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디그니타스-명예
루비콘 강을 건너기 앞서 카이사르가 고민했던 것 중 하나는 디그니타스가 아니었을까를 상상한 삽화(AI 이미지)

8. 생명보다 소중했던 것 — 디그니타스

카이사르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로마인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한 가지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로 디그니타스(dignitas)다.

오늘날의 자존심이나 체면이라는 말로는 그 의미를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디그니타스는 한 사람이 쌓아 온 공적과 명예, 사회적 위상, 정치적 권위를 포괄하는 개념이었다.

특히 로마의 귀족 정치인들에게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지탱하는 중요한 가치였다.

카이사르는 『내전기』 제1권 9장에서 자신의 디그니타스를 생명보다 소중하게 여겼다는 취지로 말한다.

나는 이 기록이 루비콘 강 앞에 선 카이사르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명예는 단순히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 것이다.

율리우스 가문의 후손이라는 자부심.

젊은 시절 시민관을 받았던 경험.

정치적 경쟁을 거쳐 높은 관직에 오른 성취.

갈리아에서 거둔 승리.

자신을 믿고 따르는 병사들과 로마 시민들 앞에서 쌓아 온 권위.

그 모든 것이 그의 디그니타스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는 그 모든 것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요구를 받고 있었다.

그의 마음에는 이런 질문이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나보다 무엇이 더 뛰어나기에 나의 운명을 결정하려 하는가.’

물론 이것은 카이사르가 남긴 말이 아니다.

그의 출신과 행적, 그리고 자신의 명예를 중시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내가 짐작해 보는 마음이다.

하지만 나는 이 질문이 그리 터무니없는 상상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이 이룩한 것을 지키려 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그러나 자신이 이룩한 것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강해지면,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의 판단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카이사르에게도 그런 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만 그의 디그니타스를 지키려는 마음이 내전을 일으킨 유일한 원인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에게는 정치적 생존과 권력, 경쟁자들과의 관계, 공화정의 제도적 갈등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마음은 더욱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9. 자신만이 로마를 이끌 수 있다고 믿었을까

카이사르는 자신의 능력을 여러 차례 증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정치적 경쟁에서 승리했고, 사람들을 설득했으며, 전쟁터에서는 불리한 상황을 뒤집기도 했다.

그러한 경험은 자신에 대한 확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린다.

카이사르는 자신이 로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가 루비콘 앞에서 실제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자신이 이룩한 업적과 능력을 돌아보면서 로마를 이끌 자격이 충분하다고 믿었을 가능성은 생각해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인간의 복잡한 마음이 숨어 있다.

자신을 지키려는 마음과 공동체를 위한다는 믿음은 언제나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권력을 지키면서도 그것이 공동체를 위한 일이라고 진심으로 믿을 수 있다.

반대로 공동체를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는 일만큼은 견디지 못할 수도 있다.

카이사르 역시 그 두 마음 사이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가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로마를 필요로 했는지, 아니면 로마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권력이 필요하다고 믿었는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어쩌면 그 자신도 두 마음을 완전히 구분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카이사르를 단순한 영웅이나 권력욕에 사로잡힌 인물로만 설명하기 어려워진다고 생각한다.

10. 원로원의 마지막 압박 — 타협은 왜 무너졌을까

기원전 49년 1월 초, 로마의 정치적 갈등은 극도로 심각해졌다.

카이사르가 보낸 제안은 원로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원로원 강경파는 그가 군대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압박했다.

1월 7일에는 국가의 안전을 명분으로 집정관 등에게 비상한 대응을 촉구하는 원로원의 결의가 내려졌다.

카이사르를 지지하던 호민관 안토니우스와 카시우스는 로마를 떠났다.

카이사르는 이 일을 호민관의 권리가 침해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호민관은 로마 평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중요한 관직이었다.

따라서 호민관의 권리가 침해되었다는 주장은 카이사르에게 강력한 정치적 명분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조심스럽게 살펴야 할 문제가 있다.

원로원 강경파가 공화정의 원칙을 무리하게 이용했다고 해서 카이사르에게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로 진입할 권리가 자동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카이사르가 공화정의 질서를 위협하는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원로원 강경파의 모든 조치가 정당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양측은 서로 자신들이 공화정을 지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대립 속에서 공화정은 점점 더 위험한 상황에 놓이고 있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로마 정치의 비극을 느낀다.

서로 상대방을 믿지 못하게 되면 법과 제도는 공동체를 지키는 기준이 아니라 상대방을 굴복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변할 수 있다.

카이사르도 그 질서 안에서 자신의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가 선택하려는 방법 역시 그 질서를 더욱 위험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것이 루비콘 강 앞에 선 카이사르가 마주한 가장 무거운 모순이었을 것이다.

11. 라벤나에서 이미 결심은 시작되었을까

여기에서 나는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

카이사르는 왜 라벤나를 떠나 루비콘 강으로 향했을까.

그는 우연히 그 강 앞에 도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당시 라벤나는 카이사르가 지휘권을 행사하던 속주에 속한 도시였다.

그는 그곳에 머무르면서 로마의 정치적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카이사르 자신의 『내전기』에 따르면 그는 라벤나에서 제13군단의 병사들에게 연설했고, 병사들의 지지를 확인한 뒤 아리미눔으로 향했다.

수에토니우스는 조금 다른 세부 장면을 전한다.

그에 따르면 카이사르는 호민관들이 로마를 떠났다는 소식을 듣자 몇 개 대대를 비밀리에 먼저 이동시켰다.

그리고 자신의 의도를 감추기 위해 평소처럼 공개 행사에 참석하고 사람들과 식사를 했다.

해가 진 뒤에야 소수의 수행원과 함께 은밀히 출발했다.

이 기록은 나에게 중요한 사실 하나를 생각하게 한다.

카이사르는 루비콘 강 앞에서 갑자기 군사행동을 결심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라벤나에서 이미 군사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었다.

병력을 먼저 이동시켰다는 것은 적어도 자신의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는 라벤나를 떠날 때 이미 강을 건너기로 마음먹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그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는 구분해야 한다.

군사행동을 준비했다는 것과 그 결심을 마지막 순간까지 바꿀 수 없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카이사르는 군대를 움직이면서도 마지막까지 다른 가능성을 생각했을 수 있다.

또한 수에토니우스의 기록처럼 일부 병력을 먼저 보냈다면, 강 앞에서의 숙고는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계획을 되돌아보는 일이었을 수도 있다.

이것은 그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차이다.

12. 라벤나에서 루비콘까지 — 침묵 속에 무엇이 있었을까

나는 카이사르가 라벤나를 떠나 루비콘으로 향하던 길을 상상해 본다.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강을 건너면 군사적 행동은 돌이키기 어려운 국면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짧은 이동 중에도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지 않았을까.

자신을 지지하는 병사들.

오랫동안 함께했던 부관들.

로마에 남아 있는 가족과 정치적 동료들.

자신을 적대하는 원로원 의원들과 폼페이우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내전.

그는 이 모든 문제를 이미 여러 차례 생각했을 것이다.

다만 실제로 그가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부관들이 어떤 의견을 제시했는지, 병사들의 동요를 얼마나 염려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장면을 소설처럼 단정해서 묘사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군대를 지휘하는 사람이 중대한 행동을 앞두고 자신의 의도를 얼마나 공개해야 할지 신중하게 판단했으리라는 가능성은 생각해 볼 수 있다.

카이사르는 오랫동안 군대를 지휘한 장군이었다.

그는 병사들의 마음을 얻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자신의 말과 행동이 군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경험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결심이 완전히 굳어지기 전에 모든 생각을 병사들에게 털어놓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이미 수없이 강을 건넜다가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병력을 움직였고, 은밀하게 이동했으며, 마침내 루비콘 강에 도착했다는 사실이다.

그 사이에 어떤 생각이 있었는지는 여전히 역사 속에 남겨진 빈자리다.

루비콘강으로 가는 길에서 고민하는 카이사르

13. 루비콘 강 앞에서, 그는 정말 망설였을까

수에토니우스의 『카이사르전』 제31장은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에 도착하여 잠시 멈추었다고 전한다.

그는 자신이 하려는 일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 생각했고, 동행자들에게 아직은 돌아갈 수 있지만 작은 다리를 건너면 무력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플루타르코스의 『카이사르전』 제32장은 그 장면을 조금 더 자세히 전한다.

카이사르는 강 앞에서 오랫동안 침묵했고, 결심을 여러 차례 바꾸었다고 한다.

또한 아시니우스 폴리오를 비롯한 동행자들과 강을 건너면 얼마나 큰 불행이 일어날지, 후세 사람들이 이 일을 어떻게 기억할지 이야기했다고 기록했다.

이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기록을 조심스럽게 읽어야 한다.

수에토니우스와 플루타르코스는 사건이 일어난 뒤 오랜 시간이 지나 글을 쓴 사람들이었다.

두 기록이 완전히 독립된 증언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카이사르 자신의 『내전기』에는 루비콘 강 앞에서의 망설임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원로원의 조치와 자신의 명분, 병사들의 지지, 아리미눔으로의 진군을 기록했지만, 작은 강 앞에서 오랫동안 고뇌했다는 이야기는 남기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기록을 믿어야 할까.

나는 어느 한쪽을 쉽게 버리고 싶지 않다.

카이사르 자신의 기록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지만,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목적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반대로 후대 역사가들의 기록은 인간적인 장면을 생생하게 전하지만, 실제보다 극적으로 구성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카이사르가 강 앞에서 얼마나 오래 망설였는지, 그가 실제로 결심을 번복하려 했는지는 확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나는 이 장면을 쉽게 지나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군사적 대응을 준비한 사람이라도 그 행동을 실행하기 직전에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결과를 다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심했다는 사실이 두려움까지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14. 그가 정말 두려워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제 나는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고 싶다.

카이사르는 루비콘 강 앞에서 무엇을 두려워했을까.

그가 군대를 내려놓으면 자신의 정치적 생존이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반대로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로 진입하면 로마 시민들이 서로를 향해 무기를 들게 될 수도 있었다.

그는 어느 쪽의 위험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느꼈을 두려움 가운데 특별히 한 가지를 생각한다.

바로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 전체가 부정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카이사르는 평생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하며 살아왔다.

명문가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에서 출발해, 젊은 시절 시민관을 받았고, 정치적 경쟁에서 승리했으며, 갈리아에서 거대한 군사적 성공을 이루었다.

그 모든 성취는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는 믿음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정적들은 그에게 군대를 내려놓고 로마로 돌아오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한 장군에게 내려진 정치적 요구가 아니라, 카이사르 자신에게는 평생 쌓아 온 명예와 권위가 위협받는 일로 느껴졌을 수 있다.

나는 그가 자신을 지키려는 마음과 로마의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 사이에서 갈등했을 가능성을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불편한 질문도 있다.

자신이 평생 쌓아 온 명예가 아무리 소중하더라도, 그것을 지키기 위해 공동체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가.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더라도, 그 부당함을 해결하기 위해 군대를 움직이는 것이 정당한가.

카이사르는 자신이 옳다고 믿었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옳다는 확신이 곧 자신의 모든 행동을 정당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가 이 사실을 얼마나 깊이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그가 강 앞에서 정말 망설였다면, 그것은 자신의 패배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이 승리하더라도 로마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했기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두 마음이 함께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대답을 알지 못한다.

15. 강 앞에 선 카이사르와 오늘의 우리

나는 카이사르를 영웅으로 찬양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단순히 권력에 눈이 먼 사람이라고 단정하고 싶지도 않다.

그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자신이 쌓아 온 명예와 권력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점에서 나는 그를 한 인간으로 바라보고 싶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결정을 내린다.

어떤 결정은 시간이 지나면 쉽게 잊힌다.

그러나 어떤 결정은 그 이후의 삶 전체를 바꾸어 놓는다.

직장을 그만두는 일일 수도 있고, 누군가와의 관계를 끝내는 일일 수도 있다.

평생 지켜 온 신념을 버리는 일일 수도 있고, 반대로 모든 것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면서 그 신념을 지키는 일일 수도 있다.

그 순간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까.

자신이 옳다는 확신일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일까.

아니면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이 부정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일까.

카이사르는 루비콘 강 앞에서 자신의 명예와 정치적 미래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가 로마의 미래를 얼마나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의 선택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가 강을 건너면 로마의 시민들도 그 결과를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우리 자신의 선택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자신이 지키려는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고 있을까.

그리고 그 결정을 통해 다른 사람이 감당해야 할 대가까지 생각하고 있을까.

마무리 — 아직 강을 건너지 않은 사람

루비콘 강 앞에 선 카이사르를 생각한다.

그는 이미 라벤나에서 군사적 대응을 준비했다.

병력을 움직였고, 자신의 의도를 감추며 이동했다.

그러나 강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나는 그가 실제로 얼마나 망설였는지 알 수 없다.

그가 자신의 결심을 바꾸려 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작은 강이 한 인간의 삶에서 얼마나 중대한 경계였는지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강 건너편에는 그가 평생 바라보았던 로마가 있었다.

그곳에는 자신의 명예를 인정해 줄 사람들도 있었고, 자신을 정치적으로 몰락시키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가 지키고 싶었던 모든 것이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강을 건너는 순간,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수도 있었다.

그는 아직 강을 건너지 않았다.

적어도 이 이야기 속에서는 그렇다.

나는 그가 강을 건너기 직전의 그 짧은 순간에 조금 더 머물고 싶다.

그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는 이미 역사가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그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한 인간의 마음속에서 무엇이 일어났는지는 여전히 우리에게 질문으로 남아 있다.

나는 내 삶의 결정적인 순간에 무엇을 지키려 했는가.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내린 선택은, 과연 내가 소중히 여겼던 것들을 지켜 주었는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