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비밀 결사 ‘제1차 삼두정치’ –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손잡은 정치적 수수께끼

삼두정치와 카이사르의 집정관

들어가면서

제1차 삼두정치는 로마 공화정 말기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사이에 비공식적으로 맺어진 정치적 협력관계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제2차 삼두정치도 있다는 것인데, 있습니다. 그것은 훗날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제1차 삼두정치에서 과연 카이사르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가 꿈꾸었던 야망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그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왜 하필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의 손을 잡았을까요.

역사적 사건의 결과를 알고 있는 우리는 쉽게 말할 수 있습니다. 카이사르는 권력을 원했고, 그것을 얻기 위해 두 사람을 이용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결과를 아직 알지 못했던 당시의 카이사르에게도 그렇게 단순한 문제였을까요.

그가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 그리고 혼자서는 넘을 수 없었던 현실의 벽부터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의 제1차 삼두정치와 정치적 협력을 표현한 역사 상상 삽화

1. 결핍을 인정하는 능력

사람의 야망은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보다,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가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제1차 삼두정치는 대략 기원전 60년 무렵 형성되었습니다.

국가가 만든 공식적인 정치기구가 아니라 당시 로마의 유력자였던 세 사람이 서로의 정치적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맺은 비공식적인 협력관계였습니다.

기원전 60년 카이사르는 법무관을 지낸 뒤 히스파니아 울테리오르(오늘날 스페인 남부·서부 지역)의 총독으로 근무하고 로마로 돌아왔습니다. 개선식은 로마 장군에게 대단한 영예였습니다. 그런데 개선식을 기다리려면 군사 지휘권을 가진 채 성벽 밖에 머물러야 했고, 집정관 후보가 되려면 원칙적으로 민간인 신분으로 로마에 들어와야 했습니다. 카이사르는 예외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개선식을 포기하고 집정관 선거를 택했습니다.

카이사르는 이미 얻은 영광과 아직 얻지 못한 권력 가운데 후자를 택했습니다.

카이사르는 왜 이미 손에 들어온 영예보다 아직 손에 들어오지도 않은 미래를 선택했을까.

그러나 그에게는 원로원의 강한 반대세력이 있었습니다.

폼페이우스에게도 마찬가지로 강한 반대가 있었습니다.

동방 원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는 이미 로마 최고의 장군 가운데 한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퇴역병들에게 토지를 나누어주는 문제와 동방에서 자신이 정리한 여러 조치의 승인을 원로원에서 뜻대로 얻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크라수스 역시 막대한 부와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이 원하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혼자의 힘으로 모두 관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의 관계도 좋지 않았습니다.

카이사르는 바로 그 틈을 보았습니다.

그는 두 사람을 화해시키고 서로의 힘을 합치는 정치적 연합을 만들어냈습니다.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의 지원은 카이사르의 집정관 선거에 큰 힘이 되었고, 기원전 59년 카이사르는 마르쿠스 칼푸르니우스 비불루스와 함께 집정관에 당선됩니다.

정치적 결합은 혼인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카이사르는 이미 약혼해 있던 외동딸 율리아의 혼약을 깨고 폼페이우스와 결혼시켰고, 자신은 피소의 딸 칼푸르니아와 결혼했습니다. 고대 로마의 상류층에서 혼인이 정치적 관계와 결합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었지만, 카이사르는 자신의 정치적 연합을 가족관계로까지 묶었습니다.

여기에서 또 하나의 불편한 질문이 생깁니다.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가족의 혼인까지 정치적 관계 속에 놓는 것은 당시 로마 귀족사회의 현실정치였을까요. 아니면 카이사르의 야망이 가족관계의 영역까지 들어온 것이었을까요.

집정관이 된 카이사르는 토지법 등을 추진했고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는 그를 지원했습니다. 카토와 비불루스 등 원로원의 반대는 매우 거셌고 정치적 충돌도 심했습니다. 이들의 반대를 단순히 ‘기득권의 저항’이나 ‘수구파니까’로만 보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은 카이사르의 정책 자체뿐 아니라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의 힘을 등에 업고 원로원을 우회해 민회로 나아가는 정치방식이 공화정의 기존 질서를 흔들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들의 반대에는 정치적 이해관계도 있었겠지만, 카이사르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권력집중에 대한 경계 역시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원로원 안에서 막히면 민회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바티니우스 법을 통해 갈리아 키살피나와 일리리쿰에 대한 장기간의 지휘권을 확보했습니다. 이후 원로원은 갈리아 트란살피나까지 그의 관할에 추가했습니다.

이것이 훗날 카이사르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게 되는 갈리아 원정의 정치적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에서 정치제도보다 한 인간의 모습을 먼저 생각해보게 됩니다.

“카이사르는 자신에게 없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폼페이우스에게는 자신에게 없는 압도적인 군사적 명성과 정치적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크라수스에게는 막대한 부와 광범위한 인맥이 있었습니다.

반대로 두 사람에게도 카이사르가 가진 정치적 감각과 중재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세 사람 모두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강한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각자 자신이 가진 힘만으로는 넘기 어려운 벽이 있었습니다.

카이사르가 다른 두 사람보다 특별했던 점이 있다면, 어쩌면 자신의 결핍을 감추는 대신 다른 사람의 힘으로 그것을 보완하려 했다는 데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첫 번째 질문이 생깁니다.

“나는 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가.

2. 타인을 이용하는 것과 협력하는 것의 경계

말이 좋아 명문 귀족이지, 당시 카이사르는 정치활동 과정에서 막대한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오늘날의 평범한 채무자와 같은 처지였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는 오랜 귀족 가문의 이름과 정치적 인맥을 가진 사람이었고, 이미 여러 관직을 거치며 자신의 능력을 보여준 정치인이었습니다.

카이사르가 주목한 것은 자신에게 없는 힘 그 자체보다, 그 힘을 가진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였습니다. 그는 폼페이우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보았습니다. 크라수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보았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마리우스와 술라의 극심한 정치적 대립이 남긴 결과를 가까이에서 경험했고, 술라의 집권기에는 자신의 신변까지 위태로워졌습니다.

그러한 경험들이 그의 정치적 현실감각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삼두정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카이사르는 자신의 힘만 믿고 벽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두 사람에게 손을 잡으면 각자가 혼자서는 얻기 어려운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설득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조금 불편한 질문이 생깁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과 사람을 이용하는 능력은 과연 얼마나 다른 것일까요.”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이해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길을 찾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협력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상대의 욕망을 알아낸 뒤 그것을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데 이용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권력이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카이사르는 어느 쪽이었을까요.

아마 그렇게 간단하게 나눌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에게 정치적 야망이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그는 누구보다 높은 곳을 바라보았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야망의 가장 깊은 곳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로마를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바꾸고 싶었던 것일까요.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치를 실현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누구보다 높은 곳에 올리고 싶었던 것일까요.

어쩌면 이 모든 것이 한 인간의 마음속에서 분리되지 않은 채 함께 움직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바로 그 점에서 카이사르는 영웅이나 악인이라는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로마 공화정의 영토 확장 과정을 시대별 색상으로 구분하여 나타낸 지중해와 유럽 지역 지도
로마 공화정의 영토 확장 과정을 시대별 색상으로 구분하여 나타낸 지중해와 유럽 지역의 상상의 지도(AI 이미지)

3. 야망은 어디까지 타협을 허용하는가

제1차 삼두정치는 세 사람이 공식적으로 국가의 권력을 나누어 가진 제도는 아니었습니다.

후대 사람들이 붙인 이름일 뿐, 당시 로마 헌정 안에 ‘삼두정치’라는 공식 국가기관이 만들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서로 다른 힘을 가진 세 사람이 각자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정치적 문제를 공동의 힘으로 해결하려 했던 정치연합에 가까웠습니다.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위대한 정치적 협력이라고만 부르기도 어렵고, 단순한 야합이라고만 잘라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큰 정치를 이루기 위한 현실적 협력이었을까요.

각자가 품은 야망을 이루기 위한 타협이었을까요.

아니면 서로의 힘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는 정치적 거래였을까요.

아마 여러 모습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저는 카이사르보다 오히려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나는 목적을 위해 어디까지 타인과 손잡을 수 있는가.”

그러나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그 목적은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삼으면서까지 이루어야 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인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좋은 목적을 이야기합니다.

가족을 위해서, 조직을 위해서, 회사를 위해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목적이 옳다고 믿는 순간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모든 방법까지 옳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그때부터 사람은 어느새 타인을 하나의 수단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카이사르에게도 이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를 바라보았을 때 그들은 함께 길을 걸어가는 동료였을까요.

아니면 자신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었을까요.

역사가 남긴 기록만으로 그 마음까지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 질문이 남습니다.

나가면서 — 더 무거운 책임으로 이동하는 인간

제1차 삼두정치를 바라보며 결국 제게 남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나는 누군가와 손을 잡을 때 그 사람을 함께 길을 걷는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만 바라보고 있는가.

그 답을 카이사르에게서 쉽게 찾을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삼두정치를 통해 정치적 기반을 마련한 카이사르가 집정관 임기를 마친 뒤 로마를 떠나 자신의 속주로 향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에게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힘이 주어집니다.

군대입니다.

로마의 정치판에서는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욕망을 읽고 타협하며 길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갈리아에서는 자신의 판단과 명령 하나가 수많은 사람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습니다.

정치적 야망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의 힘을 필요로 했던 인간이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 책임져야 하는 지휘관의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기원전 58년.

고향을 떠나 이동하던 헬베티족의 사절들이 카이사르를 찾아옵니다.

로마의 속주를 지나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카이사르는 즉시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카이사르는 다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정치판에서 사람들의 욕망을 읽었던 이 사람은 이제 무엇을 보고 있었던 것일까요.

그리고 그 짧은 기다림의 시간 동안, 카이사르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