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가 ‘인질극’을 생각하면 범죄자에게 사로잡혀 공포에 떠는 피해자의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만약 인질로 잡힌 사람이 오히려 자신을 납치한 인질범들에게 “내 몸값이 이것밖에 안 되느냐”라며 호통을 치고, 그들을 하수인처럼 부렸다면 어떨까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 황당하고도 대담한 사건의 주인공이 바로 젊은 시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입니다.
기원전 75년, 아직 로마 정계에서 본격적인 이름을 알리기 전이었던 25세의 청년 카이사르는 지중해를 항해하던 중 악명 높은 킬리키아 해적들에게 납치당합니다. 목숨이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그가 보여준 기상천외한 행동은 훗날 그가 왜 로마 제국의 지배자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명장면입니다.
1. “나를 고작 20달란트로 평가해?” – 몸값을 셀프 인상한 인질
당시 지중해의 킬리키아 해적들은 무역선이나 귀족들을 납치해 막대한 몸값을 요구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그들은 청년 카이사르의 차림새를 보고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아채고, 그의 몸값으로 ’20달란트(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사용된 무게·화폐 가치의 단위)’를 요구했습니다. 20달란트 역시 일반인 기준으로는 평생 구경도 못 할 어마어마한 거금이었습니다.
콜린 매컬로의 『포르투나의 선택 Fortune’s favorites』 3권과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등에서는 이 장면을 훨씬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몸값을 낮춰달라고 애원해도 모자랄 판에, 인질이 직접 자신의 몸값을 2.5배나 올려 부르는 비현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해적들은 기가 차고 황당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엄청난 기개에 눌려 카이사르의 요구대로 로마에 50달란트의 몸값을 요구하는 전령을 보내기로 합의했습니다.
2. 인질인가, 상전인가? – 해적들에게 붙잡혀 있던 한 달 남짓의 시간
몸값을 마련하기 위해 수행원들이 로마와 인근 도시로 떠난 동안, 카이사르는 단 2명의 하인과 함께 해적들의 본거지인 파르마쿠사 섬에 남겨졌습니다. 언제든 죽임을 당할 수 있는 포로 신분이었지만, 카이사르의 태도는 마치 휴양지에 놀러 온 귀족과 같았습니다.
그는 해적들이 시끄럽게 놀거나 수다를 떨 때면 “시끄러우니 입을 다물고 자게 해달라”고 명령했고, 해적들은 이상하게도 그의 말에 따랐습니다. 또한 카이사르는 쉬는 동안 시와 연설문을 작성한 뒤 해적들을 모아놓고 읽어주었습니다. 해적들이 글의 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면, 카이사르는 그들을 “글자도 모르는 야만인들”이라며 대놓고 비웃고 꾸짖기까지 했습니다.
심지어 해적들과 함께 체육 경기나 게임을 즐기면서 그들을 하수인 다루듯 했습니다. 이때 카이사르는 웃는 얼굴로 해적들에게 자주 이런 농담을 던졌습니다.
“내가 여기서 나가서 몸값을 치르고 나면, 반드시 군대를 끌고 돌아와 너희를 모조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것이다.”
해적들은 그저 호기 넘치는 젊은 귀족의 재미있는 농담 정도로 치부하며 함께 웃어넘겼습니다.
해적들은 왜 그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였을까. 단순히 잘생긴 외모 때문이었을까. 아마 그것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카이사르에게는 사람 앞에서 자신을 작게 만들지 않는 특유의 태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말투와 행동, 자신감과 침착함이 묘하게 어우러져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가 정말 그렇게 행동할 사람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힘 말입니다.
3. 농담이 아닌 잔혹한 현실 – 약속을 지킨 카이사르
드디어 카이사르의 수행원들이 50달란트라는 거금을 구해 돌아왔습니다. 몸값을 전달받은 해적들은 약속대로 카이사르를 풀어주었고, 카이사르는 무사히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해적들은 이제 모든 상황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카이사르에게 그것은 단순한 인질극이 아니라 ‘로마 시민을 납치한 범죄자들과의 전쟁’이었습니다. 석방되자마자 로도스 섬으로 달려간 카이사르는, 자신에게 아무런 공식적인 군사 지휘권(임페리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설득력과 배짱으로 상선들을 설득하고 용병을 모아 즉석에서 함대를 조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납치했던 해적들의 섬으로 전속력으로 돌아갔습니다. 해적들은 방심한 채 몸값을 나눌 궁리를 하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카이사르의 함대에 꼼짝없이 사로잡혔습니다. 카이사르는 몸값으로 빼앗겼던 50달란트를 전부 되찾았음은 물론, 해적들의 보물까지 모두 몰수했습니다.
이후 카이사르는 해적들을 페르가몬(아시아 속주) 감옥에 가둔 뒤, 자신이 해적 섬에서 던졌던 ‘농담’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해적 전원을 십자가형에 처한 것입니다. 다만, 카이사르는 인질로 잡혀 있는 동안 자신을 비교적 신사적으로 대해주었던 해적들에게 나름의 자비를 베풀어, 십자가에 달기 전에 먼저 목을 베어 고통을 줄여주었습니다.
4. 카이사르의 해적 사건이 주는 시사점
카이사르는 이 비범한 에피소드는 단순히 카이사르의 잔혹함이나 사소한 해프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카이사르의 포로 신분은 해적들이 결정했지만, 포로로서의 태도까지 해적들이 결정하게 내버려두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아무리 불리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스스로를 하대하지 않고 주도권을 쥐려 했던 카이사르의 자존감과 배짱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는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자신의 가치를 의심합니다.
그런데 카이사르는 달랐습니다. 포로가 된 것은 그의 몸이었지만, 그의 마음까지 포로가 된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카이사르의 진짜 무서움은 바로 거기에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카이사르의 스캔들 소문과 로마의 대중 심리가 더 궁금하다면? (2-1편 보기)
다음 회차인 [카이사르 연재 03]에서는 ‘스페인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상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카이사르’의 거대한 야망과 인생의 전환점에 대해 다루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