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역사상 가장 뛰어난 영웅을 꼽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로마시대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입니다. 후대의 역사학자들과 대중은 그를 ‘갈리아를 정복한 천재 장군’, ‘로마 공화정을 무너뜨린 독재관’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 위대한 역사적 서막이 열리던 청년 시절, 카이사르는 화려한 영웅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는 엄청난 빚에 시달리며 매일같이 채권자들에게 쫓기던 ‘막막한 빚더미 속 청년’이었습니다. 가문은 유명했지만 실속은 없었고, 정치적 입지는 위태로웠습니다. 과연 카이사르는 이 절망적인 재정적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로마 최고 권력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을까요? 그의 초년기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바꾼 정치적 결단력을 살펴보겠습니다.

1. 권력 중심에서 벗어난 명문가와 위태로운 청년기
율리우스 가문은 로마의 신화 속 건국 영웅이자 여신 베누스(비너스)의 후손을 자처할 만큼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 귀족가였습니다. 하지만 카이사르가 태어날 무렵, 당대 로마의 최고 권력층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 가문은 아니었습니다. 즉 명예는 있었지만 실질적인 부와 권력은 손에 쥐지 못했던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카이사르의 고모부였던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내전에서 패배하면서, 카이사르 역시 독재관으로 등극한 술라로부터 목숨을 위협받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술라는 청년 카이사르에게 마리우스 파벌과의 관계를 끊고 여러가지 상황과 이유로 아내와 이혼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당차게 이를 거절했고, 결국 정치적 기반을 잃은 채 로마를 떠나 도피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 따르면 다행히 어머니 쪽 친척들과 베스타 신녀들의 중재로 목숨은 건졌지만, 그는 사실상 아무런 기반도 없는 상태로 정치 인생을 다시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2. 빈 손의 승부수 – 야망이 이끈 돈 줄
술라가 사망한 후 로마로 돌아온 카이사르에게 남은 것은 거대한 야망뿐이었습니다. 당시 로마에서 정치가로 출세하려면 ‘쿠르수스 호노룸(관직 승진 코스)’이라는 정해진 경로를 밟아야 했는데, 이 과정의 각 단계마다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습니다.
민중의 표를 얻기 위해 화려한 검투사 경기를 개최해야 했고, 공공건물을 지어 바치거나 시민들에게 곡물과 선물을 뿌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스템 자체가 이미 부유한 가문 출신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었습니다.
돈이 없었던 카이사르가 선택한 방법은 파격적이게도 ‘천문학적인 대출’이었습니다. 그는 로마의 내로라하는 부자들과 고리대금업자들을 찾아다니며 미래의 출세를 담보로 막대한 돈을 빌렸습니다. 이때 카이사르에게 결정적인 자금줄이 되어준 인물이 바로 로마 최고의 부호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부를 가진 크라수스와의 관계가 깊어졌고, 두 사람의 정치적 이해관계는 훗날 폼페이우스를 포함한 이른바 제1차 삼두정치로 이어지게 됩니다.
카이사르는 빌린 돈으로 시민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었습니다. 호화로운 연회를 열고, 최고급 검투사 경기를 지원하며, 도움이 필요한 민중의 법정 변호를 무료로 맡아주었습니다. 그의 부채는 당시 기준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대했습니다. 동시에 로마 기득권층을 향한 민중의 지지율 역시 폭발적으로 상승했습니다.
카이사르는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빚’이라는 자본을 위험하게 투입했던 것입니다.
3. 인생을 건 선거, 대사제 자리를 향한 도박
기원전 63년, 카이사르 인생 최대의 분수령이 찾아옵니다. 로마 종교계의 최고 수장이자 평생직인 ‘대사제(Pontifex Maximus)’ 자리가 비게 된 것입니다. 대사제는 종교적 권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당시 대사제 선거에는 로마에서 내로라하는 원로원의 거물급 정치인들이 후보로 나섰습니다. 젊고 빚에 허덕이던 카이사르의 승리를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는 남아있는 모든 재산과 추가로 빌린 돈을 선거 자금으로 전부 쏟아부었습니다. 만약 이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카이사르는 채권자들의 독촉을 견디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완전히 매장 당하거나 야반도주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선거 당일 아침 집을 나서는 카이사르에게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자 플루타르코스는 카이사르가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어머니, 오늘 제가 돌아올 때는 대사제가 되어 있거나, 아니면 영원히 로마로 돌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날 아침 카이사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감당하기 어려운 빚으로 선거에서 패한다면 자신의 정치적 미래가 끝날 수도 있는데도 정말 두렵지 않았을까? 어쩌면 두려웠을 것입니다. 다만 그 두려움보다 자신이 로마에서 무엇인가를 이루고 싶다는 욕망이 더 컸기에 어머니에게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카이사르는 대사제에 당선됐습니다. 취임하면서 카이사르는 정계에서의 입지를 확고히 함과 동시에, 채권자들에게 “이 사람은 결국 로마의 일인자가 되어 돈을 갚을 수 있다”는 강력한 신뢰를 주게 되었습니다.
카이사르의 초년기가 현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카이사르의 청년기는 단순히 ‘빚을 잘 얻어 쓴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신이 가진 명확한 목표(권력과 공화정 개혁)를 위해 현재의 결핍에 굴하지 않고, 가진 모든 리소스와 미래 가치를 당당히 투자한 ‘극단적인 리스크 관리와 배짱의 역사’였습니다.
그는 선거에서 이겼습니다. 여기서 카이사르의 행동에 의문이 갑니다.
왜 그렇게 까지 위험한 선택을 했을까?
자신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던 것일까?
우리는 그 답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그날의 카이사르는 아직 우리가 알고 있는 카이사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저 빚에 쫓기면서도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지 않았던 젊은 정치가일 뿐이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는 또 하나의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중해에서 해적에게 납치되는 사건”
<다음 회차인 [로마사 연재 02]에서는 지중해 해적에게 납치당했을 때, 오히려 몸값을 올려 부르라고 호통치며 해적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청년 카이사르의 기상천외한 배짱 에피소드를 다룹니다.>
